아인 박종한 추모사
아인 박종한 추모사
  • 경남일보
  • 승인 2012.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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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 차나무 속잎이 파릇하게 올라온 걸 보고

첫물 찻잎으로 선생님께 달여 올리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어이쿠 이런 낭패가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니요.

얼마 전 병실에서 뵈었을 땐

당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기력이셨지만

저희들 안부 먼저 챙기시더니 기어이 생을 뒤로 하시고 마셨군요.

옴이 있으면 감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게 됨을 왜 모르리오마는 어리석은 제자는 언제나처럼 “선생님”하고 찾아뵈면 “어서 오게”하고 정겹게 맞아 주실거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제자의 몸짓은 아직도 서툴고 지혜는 일천한데 19살의 나이로 조국 독립에 앞장서 ‘반진단’을 결성하던 그 기개와 용기는 이제 누구에게 다시 배우리까?

선생님

독립된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는 오직 배움만이 최선의 길임을 깨달으시고 물려받은 가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진주시 인사동에 육영의 깃발을 깊이 꽂으시던 그 강단과 배운 자의 도리를 어디에서 다시 보오리까?

선생님

뿌리 없는 민족은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아 단군사상을 바탕삼아 한민족 현창회를 만들어 청학동에 단군전을 만들고 국조 단군을 기리게하셨습니다. 또한 반만년 조선역사의 현자들을 본받도록 모현단을 만들어 시시때때로 단군의 의미와 남명의 정신을 말씀하시던 그 열정과 끈기는 또 어찌 따라가오리까?

선생님

훌륭한 사상은 삶 속에서 되살아나야 한다며 손문의 삼민주의를 뛰어넘어 오민교육을 교육 최우선 목표로 삼고 눈 밝고 속 깊은 제자들을 키워내기 위해 한국최초로 다도교육을 교실에서 가르치시던 이 무모하리만큼 용감하던 선구자를 어찌 다시 만나 뵈오리까?

선생님

주자께서 인생의 덧없음 염려하여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 하셨는데 선생님께서는 일생동안 한 사람의 삶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업적을 남기셨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조차 생각하지 않던 박물관을 학교에 만들고, 민속학을 연구하는 ‘민학회’를 창립하시고, 한국차인연합회를 진주에서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 전통 다완과 차도구 연구에도 힘쓰셨으며, 일본인이 빼앗아간 ‘연지사종’이며 가야고분의 출토물까지 직접 찾아가서 보고 기록을 전하는 수고로움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위대함과 훌륭함보다는 제 가슴이 아리도록 자리하고 있는 것은 늙으신 선생님의 어깨 뒤로 짐 지어진 고독함이었습니다. 먼저 생각하는 자, 앞서 가는 자의 숙명이라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서글픔 말입니다.

천리를 날던 날개 꺾인 학에게 돌아오는 질타는 모질었겠지요. 자신의 모든 것인 학교를 떠나야만했던 교육 선구자의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라를 향한 장미꽃보다 붉은 사랑은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서 속절없는 절망을 맛보아야 했을 겁니다.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요. 자신의 안위나 가족의 내일은 늘 뒷전으로 하고 오직 바른 교육자의 길, 나라의 앞날만을 생각하는 선각자에게 돌아오는 메아리는 원망과 무능함 어리석음이었겠지요.

저와 나눈 많은 이야기 속에도 선생님의 한 숨은 오래 동안 긴 여운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선생님

이제는 이 모든 것 다 놓으셨겠지요.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걱정하셨던 여러 가지 일들 그 일들은 그 일들대로 자기 운명에 따라 흘러갈 것입니다, 비록 선생님의 위대한 업적이 오늘 날 세상으로부터 추앙받지 못한다고 하여도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는 분명 옳을 일을 하셨고 누구도 쉽게 본받기 힘든 훌륭한 업적을 쌓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아인 박종한의 이름은 대아의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오민대 앞을 힘차게 뛰어노는 저들 모습 속에 한 이상주의자의 무모하다던 그 용기가, 반짝이는 눈 속에서 솟아나는 지혜의 샘들이, 혼신을 다하던 한 스승의 숨결이 자리하고 있잖습니까?

아인 박종한 선생님

당신께서는 진실한 스승이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참된 애국자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대아인의 영원한 처음이십니다.

선생님 편히 하십시오.

제자 최성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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