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이 봄비를 품었다기에…한라산 꽃산행
백록담이 봄비를 품었다기에…한라산 꽃산행
  • 경남일보
  • 승인 2012.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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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한라산 백록담

▲새끼 노루귀

봄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비가 한라산 일대에 내렸다. 4월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하여 봄철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백록담에 물이 차는 현상이 나타났다. 백록담은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분화구다. 백록담이라는 이름은 흰 사슴이 이곳에 떼를 지어 물을 마시며 놀았다고, 또는 옛날 신선들이 백록주를 마시며 즐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분화구인 백록담의 길이는 동서로 600m, 남북으로 400m, 둘레는 1720m에 깊이는 108m라고 한다. 한라산의 높이가 1950m로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지만 등산이 허락된 곳은 이보다 낮은 해발 1933m 지점인 동벽이다.

야생초 산행은 잦은 봄비에 물이 가득 찼다는 백록담의 신비한 모습을 보기 위하여 한라산으로 향했다. 산행은 성판악을 출발해 진달래휴게소를 거쳐 산행이 허락된 동봉 정상을 올랐다가 북쪽인 관음사로 하산했다.

출발지점인 성판악은 해발 높이가 750m로 제주에서 서귀포를 잇는 5·16 횡단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성판악이라는 지명은 인근에 있는 성널오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수직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마치 나무판자로 성을 둘러친 것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성판악을 출발한 등산로는 한동안 평지나 다름없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평탄한 길이지만 한라산에 개방된 등산로 중에서 거리가 9.6km 가장 길고 지루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데크가 놓인 짧은 구간을 제외하고는 돌을 깔아 정비한 등산로라 무릎 등 관절에 부담을 많이 준다. 가능하면 쿠션이 있는 칼창이 깔린 등산화를 신고 양말도 두터운 것을 선택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멀고 긴 여정이지만 시작하는 곳부터 굴거리나무가 있는 숲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흥미를 끈다. 그 아래 숲속바닥에는 큰 천남성이 잎 위쪽으로 흑자색의 줄무늬가 있는 꽃을 내밀고 있다. 꽃은 넓은 포가 위쪽까지 덮고 있어 비가 내려도 피해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감싸고 있다. 한라산 숲속에는 어디든 큰천남성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다. 큰천남성은 암수 딴그루로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가을이 되면 붉은 열매가 방망이처럼 축에 매달려 있는 것이 이채롭다.

 

▲큰 천남성



아직 나무에 잎이 나지 않아 높이 올라갈수록 따가운 햇볕을 온전히 쬐어야 한다. 넓은 챙이 있는 모자가 필요한 시기다. 한라산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이 없다. 물 빠짐이 좋은 화산토라 비가 내려도 땅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어 많은 비가 내려도 잠시 흐르다가 계곡은 늘 말라 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샘이 드문 한라산 산행은 마실 물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행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식생에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굴거리나무의 개체수가 높이를 더할수록 현저하게 줄어들더니 1000m를 넘어서자 사라지고 만다. 숲속에는 제주조릿대가 우점종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초생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다만 조릿대가 성근 가장자리로 제비꽃을 비롯한 몇몇 야생초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제주조릿대가 번성하며 다른 식물을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성판악을 통하여 한라산을 오르다보면 2010년부터 개방한 사라오름을 구경할 수 있다. 사라오름은 높이가 1324m로 정상에 물이 고인 분화구가 있어 작은 백록담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주 등산로를 벗어나 안내판을 따라 30~40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사라오름 입구를 지난 곳부터 등산로는 다소 경사를 더하지만 큰 변화는 없다.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앞이 툭 트이며 진달래휴게소가 나타난다. 진달래휴게소는 간식과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정상 등반을 위하여 오르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진달래휴게소를 넘어서면 식생이 갑자기 바뀌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바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구상나무 군락이 시작되는 곳이다.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 등 태백산 이남에 위치한 높은 산의 정상 부근에만 자생하는 귀한 식물자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구상나무를 가져간 미국과 유럽인들이 정원수로 개발하고 크리스마스트리로 보급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는 나무다.

 

▲분단나무



한라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분화구 외벽을 힘겹게 올라야 한다. 키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화구벽에는 눈향나무가 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고 있다. 바람이 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정상에 도착해 내려다본 백록담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최근 뉴스로 알려진 백록담의 신비한 모습을 보기 위하여 정상 부근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날씨는 맑고 청명해 가을하늘처럼 푸른데 건너편에 한 무더기 하얀 잔설이 남아 계절이 늦은 봄임을 알리고 있다. 백록담은 비가 오면 물이 차고 맑은 날이 계속되면 고였던 물이 바닥으로 새어나가며 수량이 줄어든다. 많은 비가 내린 후 만수위까지 달한 모습을 신비하게 여기며 누구나 보고 싶어한다.

하산을 관음사로 가기 위하여 화구벽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방향이 바뀌니 식생도 달라 구상나무가 화구벽부터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태풍과 같은 큰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정상 부근까지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구상나무 아래서 비로소 하얀 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키가 작고 여린 새끼노루귀다. 긴 꽃대 끝으로 하나씩 핀 꽃이 무늬가 있는 잎과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다른 식물처럼 보인다. 새끼노루귀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주로 남쪽 섬지방에 자라고 제주도 한라산에 많이 자생한다.

급경사의 길이 끝나는 용진각 대피소가 있던 곳에 이르자 화구호 서북벽의 위용이 나타난다. 대피소는 몇 년 전 폭우로 유실되고 그 자리에 옛 모습을 담은 사진만 걸어 놓았다. 겨울이면 설원으로 바뀌는 이곳에서 히말라야 원정을 앞둔 대원들이 마지막 훈련을 하는 곳이다.

 

▲개족도리



탐라계곡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계곡에는 출렁다리가 놓였고 삼각봉 아래에는 대피소까지 세웠다. 삼각봉대피소를 지나면 길고 긴 지루한 여정이 기다린다. 환경은 성판악에서 오르는 길과 사뭇 달라 소나무가 울창한 숲이 한동안 계속된다. 바닥에는 잎에 무늬가 있는 개족도리가 막 잎과 함께 새까만 꽃을 바닥에 굴리고 있다. 개족도리가 자라는 곳은 제주도를 비롯한 섬지역 숲속이다.

적십자대피소를 지나고 다리가 놓인 탐라계곡을 건너면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 관음사까지 계속된다. 한라산의 다른 계곡과 다르지 않게 탐라계곡도 말라있고 계곡 주변 언덕으로는 노란 양지꽃과 큰괭이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봄이라지만 제주조릿대가 빈틈 없이 자라고 키 큰 나무까지 울창한 환경이라 이곳 등산로는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를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제주와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분단나무와 같은 환경에 적응한 드문 야생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한라산은 모든 산행을 당일 끝내고 하산해야 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입산시간을 정해두고 통제를 한다. 계획된 산행을 위해서는 통과시간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야생초 산행은 성판악을 출발해 관음사로 하산하는데 8시간이 걸렸다.

※찾아가는 길=제주터미널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서귀포행 버스를 이용해 성판악에서 하차. 관음사에는 버스노선이 없고 콜택시를 불러야 함./NH농협 진주시지부장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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