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댁은 발끈했다. 사실 그녀는 나환자들이 소록도를 탈출했다는 말이 떠돌 때부터 마음이 영 시끄러웠다.
“참 어머니도, 아직 일 년도 안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동숙은 일부러 맥없는 웃음까지 입가에 발랐다.
“열 달이면 애 낳는다!”
대문을 나서면서 여주댁은 딱 잘라 말했다. 불리지도 않는 팥 앞에서 팥죽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녀는 손자 욕심이 자꾸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진석이 마음이 어떤지 그것부터 꼭 살펴야 해요. 어머니??.”
여주댁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내가 진석이라면 쉽게 아이를 낳고 싶진 않을 거예요.’
동숙은 어머니의 뒷몸을 쫙 훑어 내리며 공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시아버지 자리가 나환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동생과 결혼해 준 민숙이가 그냥 고마울 따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는 이어야 해.’
여주댁은 딸의 마음을 환히 꿰뚫고 있다는 듯 양미간을 찌푸렸다.
나무장작 같은 북어를 힘껏 두들겨 콩나물국을 끓인 민숙은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 때문인지 얼굴이 어두웠다.
비밀스런 불안감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회오리쳐 옴을 느끼며 민숙은 목을 가로저었다. 밥상을 차리다 말고 안방으로 달려갔다. 습관처럼 잠든 남편의 얼굴이며 목과 팔다리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간밤에도 옷을 입은 채로 드러누워 버렸던 남편의 옷을 벗기면서 그 몸의 구석구석까지 보고 또 보지 않았던가.
‘학교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간밤에는 남편이 벽을 향하여 누운 채 어깨를 들먹이며 소리 없는 울음을 꺽꺽 짓이겼다. 억제된 남편의 그 흐느낌에 뼛속까지 아려왔던 민숙은 덩달아 잉잉거림을 깨물며 훌쩍였다.
“어머님, 어서 오세요.”
밥상을 들고 나오다 여주댁을 본 민숙은 제바람에 흠칫 놀랐다.
“아무리 일요일이기로 이제 아침이냐?”
여주댁은 밉지 않은 며느리를 곱게 흘겼다.
“아뇨. 전 먹었고 오빠만 아직??.”
“얘야, 언제까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를 거냐?”
“아, 예. 어서 들어가세요.”
“그래, 들어가자꾸나.”
여주댁은 심상치 않은 얼굴로 댓돌 위에 신발을 벗으며 공연히 사방을 휘 들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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