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닭장생활은 그만 하자
이제 닭장생활은 그만 하자
  • 경남일보
  • 승인 2012.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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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학교 EU연구소, 건축학과 교수)
근대 건축의 대표적 인물인 르 꼬르뷔제는 파르테논 신전을 ‘신전기계’로 해석하였다. 이는 근대 산업기계화 시대의 새로운 건축정신에 대한 주창이었다. 그는 1927년에 설계한 주택을 스스로 ‘주거기계’로 소개하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동차 이름을 따서 ‘씨트랭 주택’이라고 명명했다. 이를 통해 자동차의 자동화 생산방식처럼 현대 주거건축이 대량생산화될 것을 예고했다.

우리나라에서 주택이 대량생산화된 것은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이다. 당시 사람들은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이 때문에 도시는 급속한 인구증가와 폭발적인 팽창으로 몸살을 앓았고 가장 심각한 것은 주택문제였다. 이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주택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아파트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도시경관의 황폐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겨 주기도 했다. 즉 주거지역도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심처럼 회색 콘크리트더미가 그 풍관의 주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아파트가 자고 출근하는 주거기계임으로 즐겨 머물지 못하는 곳으로 되었다. 이 때문에 오늘날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대도시를 떠나 인근 전원이나 휴식처를 찾아 빠져 나가는 나들이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사정이 어떠하던 간에 아파트는 산업화시대의 중요한 주거문제의 해결책이었고 재산증식의 중요한 도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주거양태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즉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매우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소위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베이비 붐’ 세대들은 위로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과 함께 살기 위해 면적이 큰 아파트를 선호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구성이 점차 1~2인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우선 자식이 장성해서 독립한 경우, 부부가 둘이 살거나 홀로 사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통수단의 발달로 주말부부나 기러기 아빠 같은 부류가 많이 증가하였다. 대학생의 타 도시로의 유학과 대학원 진학 등을 통한 학업기간의 연장도 결혼연령을 늦춘 채 혼자 사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취업이 가져다 준 경제적 독립에 힘입어 결혼을 늦게 하거나 혼자 사는 미혼여성의 수도 급증하였다.

이 때문에 이러한 가족구조 변화에 따른 원룸형태가 주택건설 분야의 가장 인기 있는 사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피스텔과 최근 시행하는 ‘도시형 생활주택’을 꼽을 수 있다. 오피스텔은 간단한 주거시설을 갖춘 업무용의 건축으로 1인 가정을 위한 인기상품이다. 특히 최근 시행하고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 중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원룸형과 기숙사형에 대해서는 주차장 기준을 대폭 완화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이처럼 주택 이용자의 가족구성과 성향은 변화했지만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은 주거건축의 질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닭장 같은 고루한 디자인의 회색콘크리트 아파트일지라도 인생최고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경관법 등의 발효를 통해 특징적 도시경관과 쾌적한 생태 정주환경 등이 대세를 이루는 추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대두된 원룸형태의 주거건축은 과거 아파트건축이 가졌던 구태를 재현하여 여전히 도시경관을 저해하는 위험요소이다. 이는 우선 건축주나 시행자가 임대 혹은 분양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건축미나 경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데서 기인한다. 또한 작은 면적의 단위세대를 반복해서 배치하다 보니 수려한 디자인이 나오기가 어렵다. 이뿐 아니라 사업성을 핑계로 건축물 내·외부에 공공성의 공간설치를 꺼리는 것도 한 이유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설계 및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조례제정이나 건축심의 등의 잣대로 삼아야한다. 또한 새로운 주거형태에 대한 설계론적 연구와 건축교육 등도 병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도시경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주거는 르 꼬르뷔제가 주장한 것처럼 거주하기 위한 기계가 아니라 삶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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