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영가(靈駕)의 무게>
이준의 역학이야기 <영가(靈駕)의 무게>
  • 경남일보
  • 승인 2012.05.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실 증명하고 검증하기 힘든 부분이 영적인 부분이다. 영(靈)이란 사람들을 고상하고 영속적이고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개념임과 동시에 온갖 혹세무민의 바탕이 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신도들의 간증에서,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자화자찬(自畵自讚) 대화에서 자주 듣는 내용이다. “내가 무당 굿하는데 가니 굿이 되지 않더라. 무당이 말하더라. 여기 큰 신(神) 모신 분 있으면 나가라고 하더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증명되지 않는 이 신비로운 말에 기묘하게 흥분되고 이상한 승리감과 편안함과 뿌듯함을 느끼며,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또 자랑스럽게 전파한다. 나는 기독교인과 함께 굿하는데 가보지 않았으니 이 말의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

또 천도제를 지내는 스님과 그를 도와 춤추는 사람, 굿, 기타 푸닥거리를 하는 무당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번 영가는 참으로 힘이 든다. 업이 참 많이 쌓였나 보데. 어깨가 무겁고 온몸이 쑤시고 천도제 지내고 나서 이틀 동안 꼼짝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죽은 듯이 잠만 잤어, 자고 일어나니 가뿐하데…그래 자식들 보니 하나 같이 제대로 된 자식들이 없어.”, “이번 영가는 참 가벼워. 제를 지내는 동안에 신바람이 나고 저절로 춤이 되고 기분이 좋아. 그래 그 아들을 보니 별자리도 있고, 하나는 이번에 대령에서 별을 달려하고, 딸은 프랑스에서 대학교수가 되어 있고, 참 잘되어 있어. 그리도 열심히 기도를 하고 지극 정성을 들이니 자식들이 모두 잘되어 있는 것 같아.” 이 역시 나는 알 수 없는 바이다. 증명할 길이 없다. 다만 내 식으로 비뚤게 비틀어 생각하여 본다.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삶이기에 겨우 몇 푼의 굿값을 힘겹게 마련하여 내놓으니, 그것을 꿀꺽하기가 미안하여 몸이 덩달아 피곤하고 아픈 것이겠지. 잘 나가고 잘된 자식들은 큰돈을 거침없이 통 크고 흔쾌히 내놓으니 꿀꺽하여도 미안한 마음이나 부담 없고 오히려 기분 좋고 가뿐하니 저절로 신바람이 나 춤사위가 잘 되고 징소리·북소리도 경쾌하겠지.’

신성한 영의 일을 이처럼 불경스럽게 비틀어 생각하는 나는 다른 영들로부터 무서운 질타와 징계를 받을까 싶어 굿판에 가지 않는가 보다. 아니면 초등학교 일학년 때 할머니를 따라 굿하는 데 따라 갔는데, 무슨 일인지(해품달의 민화공주 제물역할?) 무당이 나에게 글을 적으라 하고, 무당이 무슨 말을 읊조리면 나는 길게 오린 한지에 한글로 따라 적고, 할머니는 아주 자랑스럽고 대견한 듯 나를 바라보시고, 내가 적은 그것을 새끼줄에 매달아 굿을 하는데, 그 어린 마음에 무당의 무식이 참으로 놀랍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무식한 무당을 신주 모시듯 연신 절을 하며 쩔쩔 매는 사람들이 참으로 어이없어 보이고, 그런 충격 때문에 그 이후로 나는 굿판에 가지 않고 있는가 보다.

다시 나를 생각해 본다. 나의 영은 영가제를 지낼 사람에게 아픔을 주는 쌓이고 쌓인 업의 무거운 영가인가, 아니면 가볍고 상쾌한 영인가. 나는 지금 또 어떤 업을 지으면서 이 윤회의 질곡에서 헤매고 있는가. 스스로 해탈하여야 하는가, 스스로는 도무지 불가능하니 오로지 예수의 은혜와 구원에 의지하여야 하는가. 알을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면 계란 프라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어떻든 나는 이런 영적인 것은 알 수 없기에 일단 괄호로 묶어두고, 다만 역리와 사회현상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깔끔하게 정리된 사주팔자는 한눈에 확 들어와 풀이하기가 쉽다. 그런 팔자를 보면 작명도 쉽게 잘 된다. 한글 오행, 한자 의미, 획수, 음파, 음상 등의 탐색과 배합이 아주 수월하고 순조롭다. 이런 팔자의 주인공은 생활도 비교적 순탄하다. 하지만 형충파해로 점철된 팔자는 난해하다. 삶도 파란만장하다. 이런 팔자는 작명하기도 힘겹다. 팔자와 매칭(matching)되는 가장 초보적인 한글 오행부터 난조(亂調)이다. 이런 것을 경험하면서 원인으로서 전생의 어떤 업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또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주질량 불변의 법칙에 비추어 영혼불멸은 당연할 것이고, 업보의 인과관계(causal relation)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만물로 태어 난 것보다 더 낫게 태어난 것이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전생의 선업이 하나라도 있었을 터이니, 이를 찾아내어 더욱 알뜰살뜰 아끼고 살려서 현생에서 수복강령(壽福康寧)하고 좋은 일과 좋은 업을 쌓아서 다음 생을 더욱 좋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과업이 아닐까 한다./역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