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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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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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 대방초등학교 교사)
지난 금요일,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뒤쪽으로 연이은 각산에 올랐다. 신록으로 우거진 숲길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새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산을 오르며 길섶에 핀 골무꽃, 사위질빵, 애기똥풀, 벌깨덩굴, 기린초 등 야생초들의 이름과 특징, 꽃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선생님 머릿속에는 식물도감이 들었나 봐요”라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꽃과 나무이름 몇 가지만 알아도 아이들에게 존경받는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식물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며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고사리 손이 참 아름다웠다.

“땀이 제 얼굴을 세수해 줘요.” “와! 표현이 정말 멋지네.” “시원한 바람이 머리도 감싸 주네요.” “그게 바로 시란다. 얼굴을 씻어주는 땀방울과 젖은 머리를 말려주는 바람을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멋진 시를 탄생시키는 거야. 예쁜 꽃과 나무들, 새와 다람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종이에 담으면 시가 되고 그림이 되는 거야. 오늘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써 보렴.”

성현이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와 각양각색의 느낌을 전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청아한 선율이 되어 산속에 울려 퍼졌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를 때 힘들어서 내려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고 이끌어 주며 다 함께 산꼭대기에 올랐다. 쪽빛 바다위에 점점이 흩어진 섬들과 연륙교, 고기잡이배들을 보면서 우리 동네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며 흐뭇해하였다. 등산을 처음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된다던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힘들어도 참고 올라오니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며 다음에 또 오자고 했다. 아이들 스스로 인내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듯했다. 고목들을 비롯해서 키 작은 나무들과 야생초 등 수많은 식물들을 만나고, 낮은 곳에서는 한 눈에 보기 어려운 풍경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마음이 산처럼 커졌으리라 믿는다.

“흠도 많은 저를 다듬어 주시고 제가 가야 할 올바른 길, 빠르고 안전한 길들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제 힘으로 사회를 배워나가고 터득해야 하지만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만 한다면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선생님은 저에게 자연 같으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다듬어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선생님을 잊지 않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며칠 전 함께 등산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홍이가 보내 준 편지를 읽는 내 마음에 감동이 번져온다. 어느 새 학부모가 되어 자녀문제를 상담하는 제자,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여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변함없이 마음을 전하는 제자들이 있기에 교사로서의 힘과 열정이 새로이 솟아난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결정해야 할 때 조언을 구하는 대학생, 시험을 못 쳐서 낙심할 때 용기를 달라며 손 내미는 중학생, 제자의 아들을 담임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나의 조언과 격려에 힘을 얻는 그들이 있기에 나만의 보람을 느낀다.

이제 가정의 달 5월이 막을 내리려고 한다. 제자들의 편지에 녹아있는 감사와 참사랑과 서로를 향한 믿음이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가게 만든다. 제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세월의 물살에도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의 불꽃을 태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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