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언 기자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개탄스럽다”는 한 선생님의 푸념이 지금의 교육계 현실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옛날에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는 감히 다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진리였는데, 지금은 학생들에게 비웃음거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은 배우는 대상이다. 이 불변의 관계는 그대로인데 지금의 교육계는 왜 아수라장이 되었을까. 어떤 선생님은 ‘체벌금지’가 교권추락의 주요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체벌은 그동안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선생님들의 ‘편리한’ 수단이었을 뿐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인성교육의 옳은 방법은 결코 아니다.
학교폭력 현장에서 학생들을 면담하고 지도하는 한 경관은 이렇게 말했다. “가해 학생들 대부분은 관심과 주목을 받기 위해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정성을 쏟는다면 학교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학생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현대문명에 노출돼 살면서 급변하는 기술만큼 사고방식도 너무나 빠르게 변해간다. 그러나 교육계는 아직도 옛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여기서 괴리(乖離)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선생님’이라는 존칭은 그냥 듣는 말이 아니다. 선생님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희생과 솔선수범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단순히 경제활동을 위한 직업인으로서 선생님의 길을 간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만큼 존경을 받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선생님은 예전에 비해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학생들에게 쏟아야 하는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흡수하는 하얀색 스펀지 같은 아이들에게 유일한 거름망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걸어가야 할 숙명과도 같은 길이다. 유소년 시절 만난 훌륭한 선생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슴에 남아 함께하는 법이다. 부디 교육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선생이 아닌 참스승’이 되어 주길 빌어본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가 학생에게는 평생을 좌우할 가르침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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