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자(虛字)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그 개체적 순수성과 존엄에 관계없이 자기의 사회적 위상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모습으로 자리매김된다. 대통령 도지사 시장 군수 국회의원 도의원 시·군의원 장관 차관 재벌회장 사장의 직함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이름이다. 반면 이름 없는 민초들은 그저 눈치보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도취돼 우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피멍 들게 하는가 하면 이름 없는 소시민들은 스스로의 사회적 처지에 주눅들어 기도 펴지 못한 채 움츠려 살아간다. 이런 사회적 위상들은 분명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지만 현실세계의 사람관계에선 무서운 힘으로써 위세를 떨친다.사주팔자에서 허자(虛字)란 이런 사회적 위상과 같은 것이다. 없는 것 같은 데 실제로 작용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대단한 파랑(波浪)을 휘몰고 온다. 허자는 사주원국에 없는 데도 실제로 작용하는 공중에 떠있는 글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주원국의 구성요인 때문에 공중에서 저절로 생긴 반작용이다. 여기에는 비합(飛合), 도충(倒沖), 공협(拱挾), 특합(特合), 납음오행(納音五行) 등이 있다.
첫째, 비합은 사주원국에 삼합과 방합 중 두 글자만 나란히 있어서 옳은 국(局)을 만들지 못할 때 나머지 한 글자를 공중에서 불러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년지에 유금(酉金), 월지에 술토(戌土)만 있다면 옳은 금국(金局)이 못되기에 여기에 해당하는 나머지 한 글자인 신금(申金)을 불러오는 것을 말한다. 허자 신금은 년지와 월지의 사이에서 작동한다. 또 만약 일지에 인목(寅木) 시지에 술토(戌土)가 있다면 나머지 한 글자인 오화를 불러들여 온전한 화국(火局)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허자 오화는 일지와 시지 사이에 위치한다.
넷째, 특합이란 지지 장간의 합을 살펴보는 것이다. 즉 자의 지장간은 임계, 축의 지장간은 계신기, 사의 지장간은 무경병이다. 이 경우 계와 무는 합하여 병화가 되려 하는 데 이런 성질 때문에 자가 사를, 축이 사를 불러 들인다는 논리이다. 자가 있을 경우 자의 지장간 안에 있는 계수가 작동하여 멀리 있는 사화 속의 무토를 불러오려는데 이것을 자요사격(子遙巳格)이라 한다. 또 축이 있을 경우 축토속의 계수가 멀리 있는 사화속의 무토를 불러오려는데 이를 축요사격(丑遙巳格)이라 한다. 다섯째, 납음오행이다. 납음은 천간의 논리는 일정치 않고 지지를 중심으로 오행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예컨대 갑을은 목이지만, 갑과 을을 천간으로 한 60갑자 납음오행에는 금수화만 있고, 목과 토가 없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하기에 비록 납음 오행의 설명이 아무리 그럴 듯하게 보이더라도 채택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국이나 세운 대운에 관성이 없는데도 대통령이 되고, 도시자 시장·군수가 되고 국회의원 장·차관 등이 쉽게 되는 것도 바로 이 허자 관성의 작용 때문이다. 만약 허자가 유일한 관성이라면 다른 사람보다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높은 자리로 오르게 되며, 허자가 유일한 재성이라면 복권 투기 등에서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귀하게 작동하는 허자도 형충 운에 닥치면 그 반작용으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어떻든 사람들은 공중에 떠있는 권력과 돈을 붙잡기 위하여 오늘도 불철주야 기를 쓰고 투쟁한다. 공중에 떠 있는 것이기에 허자를 귀하게 쓴 사람들이 더 빨리 출세하고 재벌이 될 가능성도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높다. 하지만 거머쥐어 욕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한 허기와 갈증 또 다른 성가신 의무에 옭매여 고통을 감내해야 하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기묘한 제로섬(zero sum) 게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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