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06>
오늘의 저편 <106>
  • 경남일보
  • 승인 2012.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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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오른쪽 길로 따라오라는 것이겠지?’

상대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진석은 선뜻 바른쪽 길로 방향을 정하지 않고 있었다. 때를 맞추어 ‘빨리 달아나라’고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속귀에서 울리는 바람에 그는 귀를 막았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내가 왜 이러는 거야?’

본능적으로 엇나가듯 왼쪽 길로 들어서고 있던 진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바른쪽 길을 흘겼다. 그 길로 가면 그 자신의 아버지와 필중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어리석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혐오스러운 나환자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난, 교사야!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진석은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오른쪽 길로 발을 떼어놓았다.

‘흥, 따라갑니다. 따라간다고요.’

귓전을 일부러 자극하듯 거칠게 와 닿는 상대의 발소리를 들으며 진석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저만치 달아났던 필중의 아버지는 뭔가 의심쩍다는 얼굴로 목을 뒤로 돌리며 귀를 바짝 세웠다. 뒤따라오고 있는 발소리를 확인하곤 당황히 몸을 돌렸다. 모자챙을 코밑까지 잡아당기곤 서둘러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 헉헉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진석을 발견한 필중의 아버지는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 이윽고 숲속에 몸을 숨기며 돌을 집어 들었다.

발 앞에 떨어지는 돌을 보며 걸음을 멈춘 진석은 숲으로 눈을 돌렸다. 돌을 투척한 용의자로 필중이 아버지가 지목되었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얼굴로 발길을 계속 재촉했다.

필중의 아버지는 한숨을 터뜨리다 말고 돌을 또 집어 들어 진석에게 던졌다.

“왜, 왜, 왜요?”

하마터면 돌에 맞을 뻔했던 진석은 놀란 눈을 숲으로 퉁겼다. 잔뜩 힘이 들어간 동공으로 필중의 아버지를 찾아 숲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상대의 그림자를 사정없이 흘겨댔다.

“저쪽 길로 가시오.”

“뭐라고요?”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다 말고 앞뒤 없이 진로를 방해하는 그 까닭이 궁금해진 진석은 자신의 귀부터 의심했다.

“이쪽은 위험해요.”

작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엣?”

갑자기 할 말이 궁해진 진석은 행동의 방향을 빨리 정하지도 못하고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수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소 이쪽엔 말씀이오.”

차분하게 설명한 필중이 아버지는 또다시 발자국 소리를 툭툭 내는 것이었다.

“다, 당신? 아니 필중이 아버님은 왜 그 길로……?”

제 앞가림이 더욱 급한 판국에 진석은 상대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허, 귀신도 날 보면 무서워서 달아날 거요.”

필중이 아버지는 죽임을 당할 때 당하더라도 누군가 거리낌 없이 다가와 주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덧붙이며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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