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08>
오늘의 저편 <108>
  • 경남일보
  • 승인 2012.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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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중이 곧 돌아올 겁니다.”

어머니의 속마음을 모를 턱이 없는 아들은 젖은 목소리로 본론만 말하곤 몸을 돌렸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노파의 눈에 희망이 급히 충전되었다.

“지금쯤 담임이 필중이를 만나고 있을 겁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필중이 아버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밥이라도 한 술 뜨고 가거라.”

노파는 맨발로 달려 나오며 장작 갈라지는 소릴 냈다.

“먹었어요.”

아들은 짧게 대꾸했다.

“한 술 뜨고 가래도?”

노파는 저린 가슴을 화난 목청으로 불컥 토했다.

‘어떤 얼빠진 인간이 저 지경인 내 아들한테 밥알을 챙겨주겠니? 침이나 뱉지 않고 돌이나 던지지 않으면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이지.’

노파는 쓰리고 아린 가슴을 마음 놓고 두들겨대지도 못하고 속으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어머닌 제가 더럽지 않으세요?”

아들은 조심스레 물었다.

“이 놈아, 너도 자식이 있으니 이 어미 마음을 알 것이다.”

기어이 노파는 눈물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제가 밥까지 먹고 간 줄 알면 필중인 우리 집 전체에 나병 균이 득실거린다고 생각할 겁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말을 하지 않으면 제 놈이 무슨 수로 알겠니?”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필중이 아버지는 기어이 집을 빠져나갔다.

밥 한 끼 먹고 간다고 가족에게 나균을 전염시키진 않을 것이었다. 물론 그도 한센 병에 대한 그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염려에 얽매여 상식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어디로 갈 거냐?”

애틋한 눈길로 아들을 배웅하던 노파는 가만히 놔두어도 찢어지는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발길 닿는 대로 가야죠.”

아들은 무뚝뚝하게 대꾸하곤 멀어져 갔다. 어머니의 가슴 치는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울음을 참아내느라 이를 악물었다.

할머니 이야기에 마음이 약해진 필중은 설움이 북받치는 얼굴로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녀석을 데려갈 작전에 돌입한 진석은 산에서 혼자 지내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겁부터 넌지시 주었다.

“정말로, 진짜로 이 산에 수상한 사람들 많이 있어요.”

의외로 필중이는 양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대뜸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래서 무척 위험하단다.”

진석은 녀석의 눈치를 더 살피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내놓았다.

“그 사람들은 절 더 무서워해요. 참 웃기잖아요? 더욱 웃기는 건 이젠 이 근처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필중은 싸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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