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패셔니스타 '모창의 마술사' 어치
숲 속의 패셔니스타 '모창의 마술사' 어치
  • 경남일보
  • 승인 2012.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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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와 함께 떠나는 생명 신비 여행 <5>

 

 

창원시 진북면 금산리 묘법사 인근 숲은 꽤 깊은 계곡이라 인적이 드물어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다양한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곳이다. 큰 참나무가지에 어치 두 마리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혹시 근처에 둥지를 틀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어치의 행동을 살핀 지 30여분 어치 한마리가 가시덤불이 우거진 곳으로 사라졌다. 바로 저곳이야!! 잠시 후 조심스럽게 가시덤불 안쪽을 살폈다. 

가시덤불 안쪽에는 지형지물을 너무도 잘 이용한 절묘한 어치 둥지를 발견했다. 엷은 쑥색바탕에 갈색 무늬의 알 7개가 있었다. 둥지 외벽은 굵은 나무가지로, 둥지 바닥은 가는 나무뿌리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알을 크기는 긴지름이 26.68mm 이고, 짧은지름은 22.58mm이며 무게는 7g 이었다.

오늘 생명신비여행의 주인공인 한국의 구관조 ‘어치’의 생태 모습이다. 몸길이 약 34cm이며 등과 배는 분홍빛을 띤 갈색이다. 허리의 흰색과 꽁지의 검정색이 대조적이며 날개덮깃에는 청색과 검정색 가로띠가 있다. 날개에는 흰색 무늬가 뚜렷하다.

어치는 참나무 열매를 즐겨 먹는다. 때문에 분포 지역이 참나무와 일치하는데, 어치의 학명인 ‘glandarius’는 ‘도토리를 좋아하는’이라는 뜻이다. 어치는 주로 북위 40∼60°의 유럽과 아시아에서 텃새로 살고, 일부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역에 번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겨울에 대비하여 미리 도토리를 저장해 두는 습성이 있는데, 숨겨둔 도토리를 찾지 못해  도토리는 싹이 터서 나무로 자라 참나무 숲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을 주기도 한다. 다른 새의 울음을 흉내 낼 수 있으며, 구관조나 앵무새 처럼 사람의 목소리도 흉내낼 수 있어 한국의 구관조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20여일 후 다시 찾은 어치둥지에는 7마리의 새끼가 갓 부화해 눈도 뜨지 않은 채 서로 엉겨 있었다. 어미는 새끼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품고 있다가 둥지를 떠나 먹이를 물고 와 먹이를 먹인다. 조심성이 많은 어머는 주변나뭇가지에 앉자 주변을 살핀 후 둥지로 찾아 들어 먹이를 먹이 후 새끼의 배설물을 먹어치운다.

혹시라도 배설물의 냄새로 인해 둥지가 발각될까 봐서다. 새끼의 배설물을 먹어 치워 천척으로부터 새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다. 어치의 포란기간은 16~19일이다. 지난 5월 1일 발견된 둥지에서의 알은 20일 만에 부화를 했다. 새끼가 부화하자 주변을 경계하는 어미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둥지 위치가 천척인 뱀의 공격이 용의한 터라 어미는 더욱 더 조심하는 듯 했다.

지난 5월 27일 오후 늦게 다시 둥지를 찾았다. 하루 사이에도 부쩍 자라 이제는 둥지가 비좁게 느껴진다. 7마리의 새끼들은 둥지의 작은 흔들림이 어미가 온 것으로 착각한 듯 붉은 입을 벌려 먹이를  재촉한다. 유달리 붉은 새끼의 입은 어미의 먹이사냥 본능을 극대화시키기 족하다. 몸은 둥지에 바짝 엎드리고 천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들어오면 온 몸을 일으켜 세워 먹이 쟁탈전을 벌인다.

5월 28일 먹이 공급은 암수가 교대로 하지만, 가끔은 암수가 동시에 둥지를 찾아 먹이를 먹인다. 먹이를 먹인 어미는 새끼들의 동태를 살핀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새끼 한 마리가 사라진 것이다. 한동안 어미는 둥지를 떠나지 않고 새끼를 돌보며 천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둥지 근처에는 족제비, 들고양이, 큰부리까마귀 등이 자주 출현한다. 그중에서도 큰부리까마귀가 범인으로 추정된다.

둥지 주변에서 자주 출현하던 큰부리까마귀가 둥지에 몰래 침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은 되지만 증거가 없다. 다시 큰부리까마귀가 출현하자 갑자기 둥지 주변에 2마리의 어치가 나타났다. 아마도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동료들의 지원을 요청한 것 같다. 덩치가 큰 큰부리까마귀로부터 새끼를 방어하기에는 어치 부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치 둥지.

 

▲알을 품고 있는 어미.

 

▲갓 부화한 새끼.

 

▲성숙한 어치 새끼들.


어치 둥지가 발각돼 새끼 한 마리를 잃어버린 어미는 5월 29일 급기야는 남은 6마리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떠나는 보내는 이소작전에 들어갔다. 새끼는 부쩍 자라 완전히 성숙해 있었다. 잠시 후 두 마리의 새끼가 둥지를 박차고 나갔다. 둥지를 떠난 새끼는 숲속으로 몸을 숨겨 보이질 않는다.

남은 새끼들도 곧 둥지를 떠날 태세다. 둥지에 남은 3마리의 붉은색 입을 크게 벌리고 어미에게 먹이를 재촉한다. 그러나 어미는 더 이상 먹이를 새끼에게 주지 않는다. 나머지 새끼를 둥지에서 떠나게 할 속셈이다. 배가 고픈 3마리의 새끼도 드디어 둥지를 떠났다.

숲을 건강하게 하는 어치 한 마리의 새끼를 잃어버렸지만, 둥지를 떠난 나머지 6마리의 새끼들은 또다시 우리 숲 어디에선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워 낸다. 이들 어치들은 숲에 살면서 도토리를 이곳저곳 감춰 참나무가 번성하는데 한 몫을 하면서, 다양한 소리를 흉내 내는 모창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어치’의 한 달가량의 둥지 일기를 마감한다./경남도청 공보관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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