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눈부신 건 꽃이 숨어 있기 때문인가
신록이 눈부신 건 꽃이 숨어 있기 때문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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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인제 방태산
▲동의나물

봄을 뛰어넘듯 찾아온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늦추위에 봄꽃 개화시기가 늦어져 애를 태우더니 망종을 앞두고는 고온이 지속되며 걱정을 키운다. 빈 논에 물을 채우고 바닥을 골라 모내기가 시작되면서 푸른 들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라 정작 농촌 사람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쏟아내는 찔레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지낸다. 아픈 허리 펴고 숨 한번 몰아쉬면서 바라보는 산야는 하루가 다르게 짙은 색으로 바뀌고 있다.    

야생초 산행은 삼둔 오가리로 유명한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을 찾았다. 방태산은 말 그대로 위태로움을 막아주는 곳으로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흉년에도 탈 없이 견딜 수 있는 길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다. 삼둔은 살둔과 월둔, 달둔이고 오가리는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적가리, 곁가리를 일컫는데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곁가리는 적가리와 같은 곳으로 보아 4가리라 하기도 한다. 3둔의 둔은 산속의 평평한 땅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말한다. 가리는 소가 갈 수 있는 갈이(耕)에서 유래한 말로 농사를 지을 만한 골이나 밭을 개간할 만한 산비탈을 일컫는단다.

방태산 자락과 주변에는 약수터가 유난히 많다. 방동, 삼봉, 필례, 개인약수가 있는데 그 중 개인약수는 방태산자락 제일 깊은 곳인 해발 1080m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 미네랄이 풍부한 탄산수로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매발톱



야생초 산행은 한니동을 출발하여 계곡을 따라 깃대봉을 올랐다가 배달은석을 경유 개인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개인산장으로 하산했다. 산행은 계곡을 건너면서 시작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넓고 평평하다. 길가에는 벌깨덩굴과 산괴불주머니, 광대수염과 졸방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등산로를 따라 드문드문 자리한 고추나무의 하얀 꽃에서 쏟아내는 상큼한 향기가 몸속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것 같다. 유리알 처럼 맑고 투명한 한니동 계곡을 따라 야생화가 즐비하고 막 피어난 싱그러운 신록에 반사된 햇빛 또한 눈부신 등산로다.

쉬엄쉬엄 30여분을 오르면 집터가 나타난다. 이곳은 옛날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이곳 계곡에는 화전민이 떠나버린 집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주인이 버리고 떠난 자리는 주변에서 날아든 온갖 야생초가 차지했다. 키 작은 선갈퀴가 낮은 바닥을, 물기가 많은 곳에는 미나리냉이와 황새냉이가, 금낭화는 홀로 돌 틈에서 눈부시게 불타고 있다. 하얀 노루삼이 응시하듯 선 곳에는 매발톱꽃이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고 나란히 섰다. 매발톱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전역에 드물게 자란다. 씨앗을 받아 뿌리면 번식이 잘 되는 매발톱꽃을 최근에는 관상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한니동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깃대봉 아래 8부 능선까지 느긋한 경사로가 이어진다. 높이를 더하자 낮은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피나물과 큰연령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큰연령초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중부 이북지방과 울릉도의 산지 숲속에서 자란다. 꽃잎과 꽃받침 그리고 큰 잎이 줄기 끝에 각각 3개씩 돌려나는 것이 특징이다. 

 

▲홀아비바람꽃



깃대봉을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버리고 왼쪽 산기슭으로 올라야 한다. 여기서부터 30여분 간은 급경사의 등산로다. 깃대봉까지는 단풍취와 박쥐나물을 비롯한 각종 산나물이 즐비하다. 잎이 곰취를 닮았지만 독을 지니고 있어 먹을 수 없는 동의나물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남향인 오르막에는 유난히 꽃이 큰 양지꽃과 꽃이 하나씩 달린 홀아비바람꽃, 풀솜대와 삿갓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깃대봉에 도착하니 나무들은 이제 막 잎을 틔우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홀아비바람꽃과 양지꽃, 노랑제비꽃과 민들레가 뒤섞여 자라고 있다. 이제 겨우 겨울눈을 뚫고 나온 시닥나무의 붉은 잎자루가 주변의 꽃보다 더 예쁘다.


깃대봉을 지나면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운석이 떨어진 운석분지라고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차별침식의 결과라고 한다. 드넓은 초원에는 나물 뜯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게 너도나도 먹을 수 있는 풀은 죄다 뜯어가니 산에는 박새와 같은 독초만 무성하다.

분지를 지나면 배달은석으로 오르게 된다. 배달은석은 옛날 큰 물난리가 났을 때 정상 바위에 배를 매어 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르막 바위틈에는 애기괭이눈이 수줍게 꽃대를 내밀고 있다. 꽃은 작지만 자세히 살피면 앙증맞은 꽃잎에 새겨진 분홍색의 줄무늬가 예쁘다. 그 옆에는 앵초가 붉은 꽃대를 내밀기 시작했다. 꽃이 피면 한순간 숲속을 장식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배달은석에 올라보아도 배를 매달았던 바위가 어느 곳인지 가늠할 수 없다. 아마 옛날에는 큰 바위가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벼락을 맞아 무너졌거나 비바람에 풍화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금강애기나리



배달은석을 통과한 숲속능선에는 금강애기나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작고 앙증맞은 금강애기나리를 처음 발견한 곳이 지역적으로 가까운 진부령이니 여기 자생은 당연하다. 처음 발견한 곳의 이름을 따 진부애기나리라고도 부르는 이 식물은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은 물론이고 영남알프스에서도 발견된다.

오래지 않아 주억봉과 개인약수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야생초 산행은 하산을 위하여 개인약수로 가는 길을 따랐다. 숲속에는 철지난 얼레지가 벌써 씨앗을 매달고 누렇게 잎이 바랬다. 비탈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자 키 작은 산죽이 숲속을 차지했고 빈틈으로 금강애기나리와 풀솜대 그리고 단풍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계곡이 가까운 곳에는 산괴불주머니와 미나리냉이가 서로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봄 한철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식물이지만 햇빛과 땅을 두고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계곡이 나타나고 개인약수가 가까워지자 인기척 소리가 요란하다. 약수터에 모인 사람들은 등산보다는 약수를 마시기 위하여 개인산장에서 올라 왔다. 약수터는 돌을 둘러 담을 쌓았고 샘 주변도 돌을 깔아 정갈하게 관리하고 있다. 샘이 솟는 곳은 붉은색으로 물이 든 바위틈에서 샘물과 함께 기포가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빛은 물에 포함된 철분이 암석에 달라붙으며 샘은 물론 계곡까지 물들이고 있다. 물맛은 쓴맛이 도는 것이 단맛이 사라진 사이다와 같다. 

약수터를 지나면 길은 잘 정비된 시골길 같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둘이 나란히 걸어도 좋은 만큼 넓고 평평하다. 산길은 개인산장에서 끝난다. 산장에서 출발지점인 한니동까지는 좁지만 포장도로로 이어져 있다. 거리가 멀고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 따분하고 싫어 산장주인에게 부탁하여 차량으로 이동을 했다. 이렇게 마친 방태산 회기산행은 거리가 11km에 5시간 정도 걸렸다.

/농협 진주시지부장

 

▲큰연령초

 

▲방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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