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사’의 진실
‘초사’의 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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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의 중국 고전 산책>
‘초사’에는 고자와 고언이 많아서 주석이 없으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데가 있을는지 모른다.

한무제 때 이미 회남왕 안(安)이 ‘이소장구’를 지었고 후한으로 내려오면 반고, 가규(賈逵)가 주석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다만 ‘이소’편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왕일이 ‘초사장구’ 16권을 만들게 되어서 비로소 제편을 빠짐없이 주석하였으며 송대에는 홍홍조의 ‘초사보주’가 있고 주희가 따로 깎고 정정해서 ‘초사집주’를 만들었는데 지금 이 3서가 병존하고 있다. 그 밖에도 주석가들이 많으나 모두 들지는 않는다.

왕일은 나이가 정현·고유(高誘)·위소(韋昭)보다 위이고 훈고·명물의 해석이 정확에 가까운 것이 많아서 가장 존중할 만하다. 그러나 시의(詩意)를 해석한 것을 보면 타당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는 말하기를 “‘이소’의 문은 시의 형식으로 감흥을 돋우고 비유로써 사람을 깨우친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善鳥)와 향초는 충성스러운 인물에 비하고 악금(惡禽)과 취물(臭物)은 참소하는 간신에, 영신(靈神)과 미인은 군주에, 복비(宓妃)(낙수의 여신)와 미녀는 현신에, 규룡과 봉황은 군자에, 표풍(飄風)(회오리바람)과 운예(雲霓)(비구름)는 소인에게 비했다”고 하였는데 물론 각 편 중에는 때로 이와 같이 감흥을 가탁한 것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편, 매단, 매구마다 그런 예에 집착하여 억지로 비유를 찾아내려고 한다면 본말의 전도가 너무 심하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의 갈래가 어찌 ‘충군애국’을 제쳐놓으면 모두 소용없는 감정이라고 할 것인가. 만일 ‘초사’ 전체가 왕일의 주가 해석한 대로라면 굴원은 위선자이거나 우둔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며 25편은 하나같이 도학군자의 정론(政論)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니 여기에 다시 무슨 문학적 가치에 대하여 논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왕일의 주가 비록 본서에 공이 있으나 이 점에 관해서는 실(失)도 적지 않은 것이다.

후세의 저자들이 왕왕 문학 그 자체를 위해서 문학에 종사하지 않고 문학 이외의 어떤 고상한 대의를 잘못 문학에 가탁하니 이것은 모두 ‘초사’를 오독한 데서 시작된 것이며 주가(注家)들이 실상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주희의 ‘집주’가 이러한 왜곡된 설을 많이 제거하여 상당한 청소작업을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십분 그 작업을 완수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초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제가의 주에 대하여 다만 훈고·명물만을 취하면 족하고 작자의 의도를 부연한 것은 눈을 가리고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최고(最古)의 문학작품으로 ‘시경’300편 외에는 이 ‘초사’를 들어야 한다. 300편은 중원의 한민족이 남긴 시가이고 ‘초사’는 남방의 신흥민족이 창조한 새로운 시가형식이다. 300편에도 비록 격월(激越)한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온유(溫柔)와 돈후(敦厚)가 중심이 되어 있고 ‘초사’에도 비록 함축된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정감이 발하여 애끊는 데에 그 본령이 있다. 300편은 질박, 순정한 현실문학이고 ‘초사’는 상상력이 풍부한 순문학이다. 이것이 그 큰 대조점이다. 바라건대 상기의 내용을 참고로 우리 모두 ‘초사’를 오래도록 풍송(諷誦)하여 서로 느낀 바를 이야기하여 보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국제대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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