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12>
오늘의 저편 <112>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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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안으로 들어가세요.”

민숙은 대문 안으로 먼저 들어가며 안내했다.

“아, 예. 이 늙은이가 급히 오느라 빈손으로…….”

무심코 민숙의 뒤를 몇 발짝 따라가던 노파는 걸음을 멈추며 머뭇거렸다. 국밥집을 떠올렸다. 담임의 손에 이끌려 그곳으로 가고 있을 손자의 모습도 자연스레 떠올렸다.

민숙은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더 들어오라고 인사를 차렸다.

‘길이 엇갈린 것이 분명해.’

노파는 잠시도 더 어정대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얼굴로 오른팔을 열심히 앞뒤로 흔들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사람이 어디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 거지?’

영문도 모르는 민숙은 멀어져 가는 노파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어둠이 깃들 무렵에야 집에 도착한 진석은 하루의 피로를 온몸으로 느끼며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밥상을 차려온 민숙은 코까지 골며 자는 진석의 얼굴을 어이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필중이 할머니가 다녀갔다는 이야길 전해야 할 것 같았지만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밤 아홉시가 지나자 안달이 난 필중이 할머니는 진석의 집으로 다시 달려왔다.

“우리 필중이 선생님 들어오셨쥬?”

인사말을 챙길 여유가 없어서 노파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심으론 제발 담임이 돌아와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당장 내일 출근하여 교단에 서야하는 진석의 입장은 눈곱만큼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밤을 꼬박 밝혀서라도 손자를 설득하여 데려오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예. 많이 피곤했던지 옷도 안 갈아입고 잠자리에 드는 바람에 다녀가셨단 말씀 전해 드리지 못했어요.”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직감적으로 필중이 할머니를 떠올리며 나간 민숙은 숫제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염치없지만 좀 깨워 주심 안 될까유?”

담임이 혼자 돌아온 것을 확인한 노파는 정말 염치고 나발이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 이 밤에 또 손자가 거처를 옮겨버리면 이번에는 영영 녀석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가슴이 자글자글 졸아붙고 있었던 것이었다.

“필중이 할머님 오셨어요.”

초저녁잠이 들었던 진석은 잠결에 들려오는 노파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 잠을 깼다. 산을 내려오면서 곧장 국밥집으로 달려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아이쿠 선생님, 우리 손자 놈 어디 있던가유? 그 놈 있는 데만 빨리 좀 가르쳐 주셔유.”

노파는 당장이라도 손자에게 달려갈 태세로 물었다.

‘철없는 것이 오지 않겠다고 하면 멱살을 끌고서라도 데려왔어야지.’

입속으론 터져 나오려는 원망을 잘근잘근 짓씹고 있었다.

“할머님, 필중이 그 녀석 모레는 돌아온다고 했으니 걱정하시지 마세요.”

진석은 필중이와 단단히 약속을 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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