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노릇 하기 힘든 세상
부모노릇 하기 힘든 세상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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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 교수)
어느새 바쁜 학기를 끝내고 그동안 어미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큰 마음 먹고 고성공룡엑스포엘 다녀왔다. 어딜 데리고 다니는 것이 부모노릇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다 밖으로 나가니 꼬마는 무척 좋아한다. 제법 일찍 집에서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엔 이미 차들로 꽉 차 있어 주차하는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뭔가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이미 그 대열에 서서 몇 분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긴 대열에 서서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힘겨운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차를 타고 오면서 아이들에게 계속 “오늘 공룡엑스포에 가는 목적은 신나게 노는 것도 있지만, 인내력 키우기 훈련도 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우리가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하니 참아야 된다. 그래야 더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날이다”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말은 오늘 하루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위안의 말이었고, 오늘 하루를 견뎌야 하는 내 몫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에게 몇 시간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정말 할 짓이 못된다. 아니 함께 줄을 서서 아이들의 짜증을 감당하기엔 나의 인내력이 너무 짧았다. 우리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불복으로 한명은 줄을 서고 나머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을 구경시키기 바빴다. 확실히 문명의 혜택으로 인해 줄을 서 있다가 입장을 하게 될 때면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해 가족들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한 명에 몇 명씩 사람들이 불어나다 보니 줄이 쉽게 줄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누구도 그걸 새치기라고 하지 않아 시비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바로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뭔가 좋은 것이 있는가 보다 싶어 줄 서기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계속 투덜거리면서 이걸 봐야 하냐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사진을 찍어 그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신문이나 TV를 보기도 했다. 휴일이나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질서라는 것도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몇 년 사이에 휴일이나 주말에 어딜 가려면 예약이라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어딜 가서 자거나 먹는 일이 힘들어져서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는 것이 더 확실해지는 세상 같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도 가끔씩 느꼈는데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그래도 요새는 장애인 화장실이 장애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부와 노약자, 아이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표시를 해 둬 조금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항상 여자화장실이 남자화장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 화장실을 지을 때 여자화장실을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딜 다니는 것도 한때라고들 한다. 아이들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부모를 따라 어딜 가지 않으려고 하니 어릴 때 많이 데리고 다니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들 한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도 중학생 이상의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이런 줄서기 부모노릇이 앞으로 몇 년이면 되니 이런 고단한 일 또한 행복하게 여겨야 하는 것인가. 최근 뉴스에서 비행청소년을 줄이는 지름길이 부모와의 식사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밥 먹는 일이 요새는 참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족이 함께 하루 한 끼 식사하기와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가족의 약속으로 만들어 실천하는 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단순히 어린 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와의 시간이 더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도록 가족의 규칙으로 만들어 그 시간을 가족을 위해 비워 두는 것은 어떨까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부모노릇이 참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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