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쳐야할 사천·진주통합 논쟁
이제는 그쳐야할 사천·진주통합 논쟁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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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사천문화원장)
한나라 소열 황제가 죽을 때 후주를 경계하여 ‘악한 일은 작은 일이라도 하지 말아야 하고, 선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소열 황제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의 유비를 말한다. 후주는 그의 아들 선을 일컫는다. 필자는 공자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서 법규를 넘지 않았다’고 말한 나이에 들면서 가급적이면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왔다. 무엇보다도 능력에서 부족하고, 주변이 엷다는 것도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악한 것이 어떤 것이며, 선한 일이 무엇인지는 깊이 생각하고 반추하면서 판단하려고 애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나는 왜 넓고 큰 도시에 살지 못하고 코앞을 산이 가로막고 있는 골짜기에 살아야 하는지 몹시 가슴 아팠다. 일주일만 가물어도 개울은 물이 끊어지고 바닥이 드러나는 산골에서 필자는 태어났다. 6·25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중후반 어느 해에 이승만 대통령이 군용기를 타고 사천비행장에 내렸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대통령이 지나가는 자동차 행렬을 보기 위해 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먼지를 일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자그마치 스물다섯 대의 검은 승용차 행렬은 필자에게는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진주로 나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가슴 아팠던 어릴 적 기억은 더욱 크게 자라기 시작했다. 사천에 비해 진주는 너무나 큰 도시였다. 게다가 삼천포항이 따로 시가 되어 떨어져 나가면서 사천은 볼품없는 고을로 전락했다. 사천 발전의 장애물은 비행장이었다. 넓은 들판을 비행장이 가로막고 있으니 더 이상 벋어나갈 여지가 없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천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남강댐을 건설하면서 조성된 도수로였다. 댐 아래에서 시작해 낙동강에 이르기까지의 남강주변이 모두 옥토로 변한 것과는 달리 폭우만 쏟아지면 도수로를 통해 흘러내리는 붉은 흙탕물로 사천만은 바다로서의 구실을 잃었다.

삼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했을 때 필자는 어렸을 때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훈련비행장에는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 조성돼 있었다. 그 곁에는 비행기 제조공장(KAI)이 들어섰고, 여기서 만드는 초음속기는 기술을 확충하고 판매망만 갖추면 그것이 바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큰 기업으로 발전할 것 같았다. 항만에는 조선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운용하기에 따라 세계로 벋어나갈 관문이 될 수 있는 해안선이 174.3㎞나 되었다. 내가 태어났던 산골은 공장지대로 변했다. 시로 승격해 떨어져 나갔던 삼천포는 다시 사천시로 합쳐져 있었다. 사천은 이제 어디 내놓아도 부러울 것이 없는 희망찬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일부 진주인들이 느닷없이 사천을 합병하겠다고 나섰다. 2009년 8·15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21세기에 맞게 국가의 틀을 정비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선거 및 행정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인구를 70만∼100만 명 수준으로 늘리고 전국을 60∼70개 자치단체로 행정구역을 조정해 한 지역구에서 2∼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행정구역 개편이 선거제도 개편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합의가 선행돼야 했다. 정치권의 반응이 시들하자 행정구역조정은 논의 자체가 사라지고 마지못해 들고 나선 것이 시·군 통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통합찬성에 나선 일부 대표는 상식인으로는 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천을 저네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인 것 같이 열성적이었다. 만약 통합이 됐을 경우 사천인들이 받을 불이익을 미리 보는 듯했다. 언젠가 필자도 통합을 말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태도는 이 같은 생각을 접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난 몇 달간의 논의과정에서 사천사람들은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사천은 내년이면 지명 사용 600주년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한결같이 600년 세월동안 사천을 지켜왔다. 앞으로 600년을 더 지켜내야 한다. 게다가 사천은 이제 떠오르기 시작하는 희망의 도시다. 지난 5월 15일 서부경남도시권 연계발전구상 정책세미나에 참석한 경상대학교 문태헌 교수는 ‘사천만 경제권’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천을 지키는 일은 선한 일이면서도 매우 큰일이다. 그 중심에 정만규 사천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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