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벽에 명문 벽돌 있다
진주성벽에 명문 벽돌 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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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경남도교육청 장학관)
문경새재 제1관문 조흘관 좌우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성을 볼 수 있다. 성벽 위에 가지각색으로 치장된 깃대가 마치 물고기 등지느러미처럼 나열되어 깊은 산속 골바람에 펄렁거려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주흘관 성벽은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 쌓았는데 흙벽돌처럼 규격이 일정하다. 얼마나 많은 망치질을 하고 돌가루를 불어내며 손질을 했을까.

성문 좌측 눈높이의 돌 벽돌에 ‘康熙 辛丑 改築’, 그 옆에 ‘別將 李寅成’, 이어 ‘都石手 宋成无, 李永右, 姜斗丁’라고 새겼는데 공사시기, 감독자, 도석수 이름이 눈길을 고정시킨다. 마치 감시카메라를 보는 듯하다.

청와대 뒷산 백악산 능선을 따라 돌을 다듬어 쌓은 성이 있다. 청운중학교에서 출발하여 나무계단을 땀나게 오르면 정상이다. 조금 지나 소나무에 흰색 테두리 속에 빨간 원형무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시멘트로 메우고 그 위에 페인트로 그린 동심원 표적지이다. 이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김신조 등이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다 군경과 교전 중 생긴 총탄 흔적’이란다.

계속 성벽을 따라가다 보니 글씨가 새겨진 돌 벽돌이 눈에 들어온다. ‘嘉慶九年(1804) 甲子 十月日 牌將 吳再敏 監官 李東翰 邊首 龍聖輝’라고 새겼다. 공사 일자와 책임자의 직명, 감독자 등을 새겼는데 실명제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남강을 따라 진주성이 있다. 고려 말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석성으로 고쳐 쌓았고, 2002년 공북문 복원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진주성 공북문 매표소 오른쪽에 ‘진주성 수축관련 명문’을 소개한 안내판이 있다. ‘1680년 진주성을 개축할 때 축성작업 담당을 표기한 것으로, 康熙十九年(庚申年) 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강희 19년 산음 마병의 중초인 사천 곤양 하동 단성 함양 등 여섯 개 관할구역이 한 개의 초를 이루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주성을 구성하는 벽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에 글을 새긴 벽돌은 2개이며 소중한 역사자료이다. ‘한 구역을 여섯 고을 출신이 부대를 이뤄 마군 중초가 담당하여 보수했다’는 구절은 구간별 지역할당, 조선 후기 지방군대의 마병과 보병의 조직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여러 사람이 쉽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성 외부에 위치하고 지붕을 기와로 얹은 대형 안내판으로 가려져 있다. 안내판은 진주성 안내도 및 한글·영어·일본판의 진주성 소개 등 3폭으로 길고 성벽과 밀착되어 옆걸음으로 이동해야 실물을 볼 수 있다.

6월 초순, 진주성 중앙잔디광장에서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우물터를 발굴하였다. 진주대첩을 이룬 것은 성안에서 자체적으로 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 우물을 복원, 역사 교육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라 한다. 발굴하여 역사자료로 활용하는데 지상에 있는 진주성 역사를 새긴 벽돌을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여 명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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