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6월의 산하(山河)에는
아직도 6월의 산하(山河)에는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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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6월 중순인데도 한여름 같은 폭염 아래 6월의 산하는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쟁과 숱한 폭거의 생채기를 털고 일어나 의연한 자세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아름다운 산하는 넉넉하게 우리를 안아준다. 이름 모를 계곡과 골짜기에 13만여 명의 국군용사의 유해가 차가운 땅속에서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슬픔들이 묻어 있는 6월의 산하는 고즈넉하다. 6월은 전선으로 달려간 수많은 호국용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해야 하고 6·25 전쟁이 남긴 30만 명의 전쟁 미망인의 고통과 10만 명 전쟁고아의 울음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들의 눈물을 가슴에 새겨야 하고 그분들이 살아온 아픈 세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6월이 우리에게 주는 화두(話頭)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이미 화석이 되어 버린 듯 호국과 보훈이라는 단어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거리에는 군데군데 호국보훈의 달임을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눈에 띌 뿐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훈에 대한 관심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호국보훈이란 가장 중요한 가치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폄하되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비목공원에는 찢겨진 채로 돌무더기 앞 고목 위에 걸려 있는 녹슨 철모는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 듬성듬성 구멍이 난 철모를 전사한 남편을 찾아 헤매던 어느 새색시가 올려 놓았을까. 깊은 밤 달빛 타고 산을 내려온 궁노루가 전사한 국군용사의 시신을 보고 슬피 울었을까. 내 가슴이 타들어가듯 어둔 밤을 하얗게 태워버린 산 목련을 보고 젊은 미망인은 밤을 새워 통곡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불면의 밤을 그렇게 하얗게 지샌 유족들의 눈물도 말라버린 6월도 이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호국용사들의 무용담과 유족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우리 후손들에게 전승(傳承)시켜야 하고 아픈 상처를 맨가슴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보훈가족이 가슴 뿌듯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전사한 국군용사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부모에게는 더 없이 귀한 아들이었으며 다정한 우리의 아버지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겪어야 할 그 슬픔을 나 대신 겪고 있는 보훈가족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그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6월은 눈부신 데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국가유공자의 고통, 미망인과 유족의 한스러움이 남아 있다. 이분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대한민국과 온 국민의 이름으로 위무(慰撫)해 주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어야 한다.

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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