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가치와 지역대학에서의 역할
인문학의 가치와 지역대학에서의 역할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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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규 (창원대학교 총장)
몇 년 전, 전국 대학의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를 성명서로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적잖은 사회적 파장과 함께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한 수많은 담론들이 오갔다. 주로 교육당국의 인문학에 대한 홀대를 질책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성론도 많이 제기되었다. 인문학이 세상에 대해 담을 쌓고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버렸고 대중들과 삶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학문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자책이었다. 많은 교수들과 학자들이 이 점에 대해 공감했고, 그 후 일상의 영역에서 인문학적 가치를 매개로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들이 생겨났다. 노숙자나 재소자, 빈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강좌에서부터 사회 지도층을 위한 강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 강좌가 시도됐다. 아직까지 그 성과에 대해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사람들의 예상치 않은 호응과 관심은 일단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인문학이 학문으로선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현실적인 쓸모가 떨어진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인문학은 다 방면에 걸친 쓰임새를 갖는 유용한 학문이다. 그 이유는 인간성 회복이나 예술적 감수성과 같은 인문학적 가치들은 어떠한 도구적 이유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에서 고전읽기를 필수과목으로 정하는 것도 바로 고전 안의 인문학적 가치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도 인문학은 세상의 관심을 더 많이 끌 것이다. 그 이유는 가난과 배고픔이 사라지고 물질적 욕구가 더욱 쉽게 충족되는 미래에는 실용적 지식이나 경제적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꿈’과 ‘감성’과 같은 인문학적 가치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문학적 가치들이 자연과학이나 공학과 같은 물질적 가치와 결합되었을 때 그 시너지 효과가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문학적, 예술적 창의력과 상상력을 통해 소비자의 감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인문학 혹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즘 대학의 최고 관심사는 학생들의 취업문제다. 대학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학생들의 취업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 신입생들에게 대학에 진학한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의 학생이 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학부모들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 결국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 학생들의 취업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대학은 취업을 위해 실용적 학문을 가르치고 취업을 위한 지식과 기능들을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대학은 학생들이 사람다운 삶의 길을 넓혀갈 수 있도록 지혜와 통찰력을 제공하는 인문학 교육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위와 같이 상충되는 현실 속에서 인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문학자들은 인문학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겠지만 대학을 운영하는 필자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 역사, 문학, 예술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교육적 측면에서 인문학 교육은 강화돼야 한다. 즉 인문학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처럼 획일화된 인문학 분야의 학사 운영체제에서는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명의 졸업생 중에서 2~3명의 졸업생만이 취업을 하는 상황이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의 책임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아무리 국립대학이 기초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창원대와 같은 지역대학에서는 특히 자발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특히 현재와 같은 전통적인 학과나 전공체제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다른 학문분야와 끊임없는 융합을 시도하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다른 학문을 복수전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녀 교육을 위탁받은 대학이 수행해야 할 진정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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