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22>
오늘의 저편 <122>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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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모르는데요?”

 형식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는 지금까지 귀빠진 날이 아니고는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부엌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미역줄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턱이 없었다.

 “없으면 빨리 가서 사와요.”

 노파는 형식의 등을 떠밀었다.

 쫓겨나듯 살림집에서 나온 형식은 가까운 시장으로 발걸음을 당겨갔다.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태양이 늦가을의 오후에 불침을 놓아대고 있었다. 불현듯 그는 속귀에서 되살아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되씹었다. 증손을 안아보고 싶다고 하던 그것이었다.

 ‘내가 너무 했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형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용케 형식의 미곡상을 찾은 정자는 철주에게 살림집이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앴다. 그녀 혼자 서울에 온 것이다. 할머니는 정자의 등을 떠밀며 갑자기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둘러대며 집에 있겠다고 했다.

 “가게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사장님 모시고 오겠습니다.”

 형식의 요즘 사생활을 눈치 채고 있던 철주는 당황했다.

 “그냥 길만 가르쳐 주세요.”

 평소에 눈치가 남달리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정자는 상대의 호의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오실 때가 되었는데…….”

 철주는 마지못해 앞장서서 형식의 살림집으로 앞장섰다.   

 담벼락을 일부러 터서 만든 것 같은 푸른색 샛문이 보이자 철주는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몸을 재빨리 돌릴 때 정자는 떨려오는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날아서 갔다 왔수?”

 문소리를 들은 노파는 미역 사러간 형식이가 돌아온 줄로만 알고 방문을 열었다.

 “어맛! 누, 누구세요?”

 작은 부엌이 바로 나타나고 마주보이는 그 방문이 열리면서 낯선 노파가 얼굴을 내미는 바람에 정자는 당황했다.

 “색신 누구유?”

 무심결에 반문한 노파는 보따리를 들고 서 있는 정자를 보며 대강 알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정자는 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까지 남편이 미곡상의 딸린 방에서 생활하는 줄로만 알고 있던 그녀였다. 살림방을 따로 구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방금 전부터 시앗을 끼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남편의 방에서 나오는 늙은 여자에 대하여 도무지 생각의 갈피가 잡히지 않고 있었다.

 “학동……. 시골집에서 왔는데요?”

 머뭇거린 후에야 정자는 그렇게 대꾸했다. 너무 조옹하기만 한 방안에 대한 궁금증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럼 난 가 봐야겠수.”

 방안으로 그었던 의미 있는 눈길을 정자에게로 당겨오며 노파는 서둘러 꽁무니를 뺐다.

성의 없는 인사로 노파를 배웅하고 몸을 돌린 정자는 비로소 방문 아래에 놓인 여자의 구두를 보았다. 열린 방문으로 목을 들이밀었다. 누워있는 젊은 여자를 보곤 신음소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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