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23>
오늘의 저편 <123>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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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죄송해요.”

수향이가 먼저 정자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정자는 두 다리의 힘이 한꺼번에 풀려 옴을 느꼈다. 기어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리듯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픈 자존심을 달릴 길 없어서 주먹을 꾹 쥐며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정말, 정말 죄송해요.”

하얗게 질린 정자를 보며 수향이는 몸을 일으키려다간 아랫배를 움켜쥐며 도로 드러누워 버렸다.

‘복스럽게 생겼잖아! 나보다 어려 보이기도 하고…….’

수향이는 형식에게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겉늙어 보이는 시골뜨기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형식보다 나이가 몇 살은 더 많을 것이라고 넘겨짚기하고 있었다.

쪽진 머리를 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신여성처럼 세련되어 보이진 않았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앳되어 보여서인지 눈을 씻고 보아도 밉상은 아니었다. 수향이는 자신의 얼굴로 손을 가져가며 몸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다.

“죄송한 줄 알면 당장 떠나.”

정자는 좀 세게 나가기로 했다.

‘흥, 저게 새집이야? 사람 머리통이야? 생긴 건 또 저게 뭐야? 꼭 보리밥덩이처럼 생겼잖아?’

빠글빠글 볶은 상대의 파마머리를 보며 쥐어뜯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자도 머리칼에 힘을 좀 주고 싶어서 읍내 미용실에 가 본 적이 있었다. 5원씩이나 달라고 해서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편한테 단 한 번도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정자였다. 남편이 뼈 빠지게 번 돈으로 엉뚱한 년이 멋 낸다고 생각하니 당장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갈 때 가더라도 몸을 추스르고 가야죠?”

톡 쏘아붙인 수향이는 앞뒤 없이 몸을 벌떡 일으켜선 거울 앞으로 갔다.

“헛! 허, 세상에?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낯바닥에 분칠을 해대기 시작하는 수향이를 보며 정자는 무심결에 소리를 꽥 질렀다. 그녀가 너무 미웠다. 죽이고 싶도록.

“보며 몰라요?”

수향이는 입술까지 빨갛게 바르고는 도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본처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건 절대로 아니었다. 본처에게 밀려나고 싶은 생각은 개미눈물만큼도 없었다. 애도 떨어진 판국에 믿을 데라곤 형식의 사랑밖에 없었다.

“본데없는 년, 누구 앞에서 드러눕고 야단이야?”

기어이 정자는 수향이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화장까지 하고 다시 드러눕는 것을 보니 약이 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실컷 잡아 흔들지도 못하고 그냥 놓아주고 말았다.

“어, 언제 왔소?”

엉거주춤 일어나는 정자를 본 형식은 퍽이나 당황했다. 미역 든 손을 등 뒤로 슬쩍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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