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등 뒤로 가선 객기를 부리듯 숫제 미역을 빼앗았다. 어디에 그런 오기가 숨어 있었는지 그녀로서도 알 수 없었다.
‘흥,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거였어?’
미역을 물에 담그면서 정자는 비로소 수향이의 낯빛이 유난히 허연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남편과 살을 맞댄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음을 떠올리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년아, 하늘은 뭐 너 같은 년 복 주려고 내려다보고 있는 줄 아니?’
고소해서 쾌재라도 부르듯 입을 삐죽거리던 정자는 방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 어디 가? 나 저 분 무서워!”
형식이가 방에서 나가려고 하자 수향이는 부엌을 목으로 가리키며 콧소리를 냈다.
‘여우같은 년!’
정자는 당장에 안으로 들어가 수향이의 머리털을 다 뽑아놓고 싶었다.
“보살 같은 사람이야.”
형식은 퉁명스레 말하곤 기어이 방문을 열었다. 아내와 수향이 이 두 여자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민숙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당신은 저 분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시나 봐. 나 당신 따라 갈래.” 수향이는 일부러 울먹이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내가 도망가니?”
정자는 또 시앗이 고소해서 왼쪽 입술을 위로 찢으며 코를 벌렁거렸다. 이어 민숙의 얼굴이 눈앞에서 돋아나고 있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동대문시장까지 단걸음에 온 형식은 이마를 툭 쳤다. 아내 편에 할머니의 옷감을 좀 끊어서 보낼 작정이었는데 다 저녁때여서인지 가게 문이 거의가 닫혀져 있었다. 동숙과 여주댁이 운영하는 포목점으로 뛰듯 걸었다.
“너 형식이 아니니?”
막 문을 내리고 있던 동숙이가 형식을 먼저 보곤 반색했다.
“와, 누님, 잠깐만요?”
“아니 왜? 설마 옷감을 끊으러 온 건 아닐 테고…….”
달려오는 형식을 보며 동숙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옷 한 벌 해 드리려고요. 어울리는 것으로 좀 골라 봐 주세요.”
형식은 급히 둘러 대곤 멋모르는 얼굴로 옷감들을 휘 둘러보았다.
‘추석빔을 해 드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왜 노인네 옷감을 끊겠다는 걸까?’
얼마 전에 추석이 지난 터여서 그런지 여주댁은 포목점에 등장한 형식의 속내가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네 처한데 잘 맞겠다. 안 남기고 줄 테니까 가져 가. 장가까지 간 사람이 할머니 것만 챙기면 되겠니?”
매상 올리기에 신이 난 동숙은 색이 고운 옷감을 형식이 앞에 들이대며 훈계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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