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25>
오늘의 저편 <125>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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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런 얼굴로 형식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아내에게 뭘 사 주기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 않던 짓이어서 그런지 왠지 멋쩍었다.

“시골엔 내일 갈 거냐? 가거든 할머니께 안부 전해다오.”

형식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여주댁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이놈이 추석 때 시골집에 가지 않은 게로구나!’

이윽고 여주댁은 때 아닌 때 나타난 형식을 보며 야무지게 결론을 내렸다. 명절에 시골집에 가지 않았던 불효를 옷감으로 때우려한다고 그렇게.

“아, 예.”

형식은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아내가 서울에 다니러 왔다는 이야기는 왜 하기 싫은지 그로서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모처럼 시골에 간다는 놈 얼굴이 왜 저 모양인고? 설마 아직도 우리 새아기를 마음에 두고 끙끙 앓아대는 건 아니겠지?’

여주댁은 영 재미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형식을 향하여 급기야 가시눈을 뜨고 있었다.

“아, 예.”

형식은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아내가 서울에 왔다는 이야기는 왜 하기 싫은지 그로서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진석이 형은 잘 있죠?”

옷감을 받아 쥐며 형식은 정말 자연스럽게 진석의 안부를 물었다.

“잘 있고말고. 우리 진석인 깨가 쏟아지고 있어.”

여주댁은 마치 할 말을 준비라고 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나이 드시니까 느는 건 주책밖에 없으시네요.”

어머니의 즉석발언이 무안했던지 동숙은 우스갯소리로 상황을 무마시켰다.

형식은 실없이 그냥 웃었다. 가게를 나와선 또 갈 데가 없다는 표정으로 무작정 걷다간 가까운 선술집으로 발길을 당겨갔다. 술잔 속에 어리는 민숙의 얼굴을 보곤 한숨을 쉬어댔다.

어둠이 깃들자 초저녁달이 노란얼굴을 드러내며 소박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던 민숙은 잠자리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양초를 꺼내 남편의 발치로 가져갔다.

요즘 남편이 유난히 손발을 자주 씻어대곤 해서 민숙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사실은 멀쩡한 양말을 무조건 버리려고만 하던 그때부터 까닭이 확실한 불안감은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거의 매일 남편의 손과 발을 남몰래 살펴보곤 하는 것이었다.

‘으, 으윽, 으윽 움움??.’

민숙은 입술을 뚫고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눈은 오른쪽 발등에 꽂혀 있었다. 엄지손톱 크기의 붉은 반점이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오빠가 너무 불쌍해요.’

여주댁과 화성댁을 동시에 떠올리는 민숙의 눈에선 눈물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훌쩍임을 더는 참을 수 없는지 입을 막으며 밖으로 나갔다.

“아니, 누나?”

술김에 민숙의 집까지 오고 만 형식은 대문 바깥쪽 담 밑에 쪼그리고 앉은 민숙을 보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혀, 형식아 네가 웬일이니?”

눈물을 재빨리 훔쳐내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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