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리와 百年之大計
경제논리와 百年之大計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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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 (경남도의회 부의장)

IMF 이후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통폐합이 속출하더니 이제 어느새 행정구역에까지 활발한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경남에서는 창원시와 마산시, 진해시가 합쳐져 통합 창원시가 출범되는 사례도 지켜보았다. 통폐합이 대세로 여겨지는 요즘, 소규모 학교가 존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5월 17일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는 입법예고를 했다. 핵심은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강력 추진하기 위해 학교의 적정규모에 관한 기준을 신설하는 데 있다. 입법예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중·고등학교의 적정규모 최소 학급수는 초등학교가 학년별 1학급을 원칙으로 6학급,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각 6학급과 9학급이다. 또 초·중·고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최소 20명 이상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경남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농·산·어촌 학교 상당수가 통폐합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다. 장점으로는 소규모 학교의 열악성을 타파해 상대적으로 수준 높은 교육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학교에 있던 학생들에게 더 큰 교육의 장이 마련되며 교사들도 보다 나은 교과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합창이나 합주, 단체종목의 스포츠 활동, 수준 높은 방과후 수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도 소규모 학교보다는 훨씬 쉽게 실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학교를 무작정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소규모 학교가 문을 닫으면 그만큼 폐교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이는 안 그래도 심해지고 있는 농촌의 상대적 빈곤현상에 편승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학교 없는 동네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교과부의 새 기준안을 전국적으로 적용하면 전남·전북·강원도가 50% 이상, 경북·충남 40% 이상, 충북·제주가 30% 이상 통폐합 대상으로 집계된다. 그리고 경남지역도 마찬가지다. 특수고를 제외하면 경남에는 현재 모두 974개의 초·중·고가 있다. 초등학교는 512개교 가운데 226개교로 44%, 중학교는 273개교 중 79개교로 29%, 고등학교는 189개교 가운데 27개교로 14%가 통폐합 대상이 된다. 숭고한 교풍과 전통을 지켜오며 전인교육의 장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한 학교들이 어느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형국이다.

이에 해당 학교장들과 교원노조 등의 반발이 심하다. 특히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14일 울산에서 임시회를 열고 농·산·어촌학교의 통폐합 추진이 골자인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공동결의문은 시행령 개정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곧 농·산·어촌학교를 고사시키거나 귀농 붐에 찬물을 끼얹는 맹목적 경제논리라고 질타한 것이다. OECD 국가의 기준만 보더라도 학급당 학생 수는 25명인데 교과부가 20명 이상으로 규정한 것 역시 논란의 정점에 서 있다.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들의 교육문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따르는 학부모들도 많겠지만 학교는 학교 그 자체로서 존재이유가 있다고 필자는 본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았던가. 단순한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절대 되지 않는 사안이다. 그리고 보편적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중앙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시·도 교육청이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잘 조절해 나오고 있다. 한번 학교에 대한 통폐합을 하려고 하면 그 학교의 총동창회 및 지역민의 이해와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상당한 고충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지역적,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경제논리와 백년지대계,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할 수 있는 혜안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박동식 (경남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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