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오늘의 저편
<126>오늘의 저편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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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오늘의 저편

‘말도 안 돼. 어쩌자고 들어오는 거야?

설마 셋이 한방에서?’

정자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머, 자기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누나, 울고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야? 왜 우는 거야? 형하고 싸웠어? 깨가 쏟아진다고 하더니?”

형식은 날숨에다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며 떠들어댔다.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러니? 술 한 잔 한 것 같은데 집에 빨리 들어가라.”

민숙은 등을 돌렸다.

“집에 빨리 가. 집에 빨리 가. 누난 나만 보면 집에 빨리 가란 말만 하지. 형 지금 안에 있지?”

저돌적으로 돌변한 형식은 민숙을 옆으로 제치곤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오늘 학교 숙직이야. 사실 나 울었어. 떨어지는 낙엽을 보니까 갑자기 고향생각이 나잖니?”

민숙은 나오는 대로 무작정 둘러대며 대문 밖으로 끌어냈다.

“참 누나도 귀엽긴, 언제 철이 들려고 그래요?”

맥없이 밖으로 끌려나온 형식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몇 마디 더 떠들다간 민숙에게 떠밀려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형식은 결국 살림방으로 갔다. 두 여자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곳으로 가고 만 것이었다.

정자와 수향이는 형식이가 들어오는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절대로 서로 좋아할 수 없는 그녀들은 각각 이쪽 벽과 저쪽 벽을 향하여 누워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쩌자고 들어오는 거야? 설마 셋이 한방에서?’

정자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머, 자기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수향이는 발딱 일어나며 콧소리를 냈다.

‘흥, 내 손으로 끓여준 미역국을 처먹을 땐 다 죽어가는 낯짝을 해 쌓더니 저 지랄하는 꼴 좀 봐. 백여우 같은 년!’

“왜 자지 않고?”

정자를 힐긋 곁눈질한 후 형식은 두 여자 가운데 벌렁 드러누웠다. 방안엔 금방 술 냄새가 가득 차 버렸다.

옆으로 몸을 돌린 수향이는 몸을 형식에게로 노골적으로 끌어갔다. 뭘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형식을 본처에게 내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더러운 년! 수작 거는 꼴 좀 봐.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뭐하자는 거야? 지금!’

정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형식은 수향이를 피해 정자에게로 몸을 끌어갔다. 벽을 향하여 꼼짝없이 누워 있는 아내가 가엾어 보였던 것이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짓인가? 저 년이 있는 데서 뭘 어쩌자고?’

남편의 숨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며 정자는 숨을 죽였다.

‘나보고 물러나라고? 흥 천만에!’

형식에게로 팔을 뻗은 수향이는 이를 악물며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이거 왜 이래?”

형식은 화를 버럭 내며 수향이의 팔을 걷어내선 방바닥에 팽개쳤다. 아내에게 남편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가슴을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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