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손맛 이어 받은 '된장남'이 지키는 장 맛
할머니 손맛 이어 받은 '된장남'이 지키는 장 맛
  • 강진성
  • 승인 201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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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영성공스토리]박종옥 합천우리식품 대표

사진설명=된장, 고추장 등을 생산하고 있는 합천우리식품 박종옥 대표가 메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전통된장을 생산하는 합천우리식품 박종옥(41) 대표는 대화를 나누다보면 된장처럼 구수한 향이 난다. 친근감있다는 말에 박 대표는 ‘첫 인상이 차갑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전통방식에 대한 고집과 느림의 미학을 얘기하는 그의 철학을 들어보면 천상 된장을 닮았다.

그의 구수한 성격만큼 고객도 구수하다. 대구에서 떡집을 하는 한 고객은 매년 떡을 보내온다. ‘맛있는 된장을 계속 만들어 달라’는 이유다. 포항에 사는 한 고객은 홍보대사나 다름없다. 인사를 치를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집 된장을 주문한다. 그렇게 맛 본 사람은 또 단골이 됐다.

울산의 30대 고객은 초등학생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합천공장까지 찾아왔다. 아들이 일부 재래된장의 비위생 유통과정을 고발한 TV뉴스를 보고 된장을 안먹으려 하기 때문이란다. 박 대표는 그 고객을 견학시키며 제조과정을 일일히 설명했다. 사진까지 찍어간 고객은 결국 아들을 안심시키고 잘 먹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서울에서도 공장까지 찾는 손님이 종종 있지만 박 대표는 싫지 않다. 한번 더 믿음을 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속이지 않는 전통 제조방식에 안심할 수 있는 위생관리로 갑작스런 방문도 당황스럽지 않다.

열성단골이 몇 명이나 되냐는 질문에 박 대표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몇 명이지? 세기 힘든데요. 수백명은 넘을 것”이라며 느스레를 떠는 그는 “재료와 제조방식이 일단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품이 좋다고 팔리는 세상이 아니다. 박 대표가 손님 급속히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입소문 마케팅’이다.

◇전국으로 판촉행사…10년 단골 만들어

박 대표는 첫 직장에 입사한 지 한달만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을 것을 권유받았다. 고등학교 진학부터 도시생활을 해 온 그에겐 뜻밖이었다. 고향을 좋아했지만 장담그는 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재래식된장이 향후 각광받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199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합천우리식품의 역사는 박 대표의 할머니인 故강창순 여사로 거슬러 간다. 동네에서 장담그는 솜씨가 뛰어났던 덕에 장을 얻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강 여사의 아들인 박우근씨는 어머니의 장맛이 끊기는 것이 아쉬웠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보리쌈장(지장)을 좋아한 그는 제품화하고 싶었다. 1995년 공장설립을 했으니 박종옥 대표가 내려왔을때만 해도 아직 자리를 잡기 전이었다. 당시엔 주위에서 곧 망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때만해도 모든 집이 장을 담그니 누가 사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박우근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장만들기 힘든 도시민은 사먹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머니의 맛이 그리운 30대 이상은 통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5~6년 후 웰빙붐이 불면서 그의 안목은 적중했다.

“아무리 우리집 장이 맛있다고 해도 안팔리면 소용없잖아요. 그래서 무작정 뛰어다녔죠” 당시 28살 이었던 박종옥 대표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지역특산물 판촉행사에 달려갔다.

과장 직함을 달고 영업에 나선 그는 “우리집 장맛은 자신있었는데 손님들 반응이 뜻밖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이야 재료좋고 몸에 좋으면 비싸도 사먹지만 10여년 전에는 통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국산콩만 쓰는데다 전통식으로 담다보니 1년에 한번밖에 된장을 생산할 수 있었다. 비싼재료에 대량생산할 수 없으니 마진을 적게해도 가격이 비쌌다. 백화점 판촉에 가보니 대기업 된장제품보다 5배나 비쌌다. 맛이 좋지만 비싼 가격에 손님의 발걸음은 돌아갔다. 목이 쉬어라 설명하는 박 대표의 열성덕분인지 몇몇 고객이 반신반의하며 사갔다.

그랬던 손님의 반응이 나왔다. ‘맛있다’, ‘더 사겠다’구수한 시골장맛에 반한 도시민들이 이웃과 친척에게 권하면서 손님이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한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탄력이 붙었다. 새 고객 대부분이 “누가 소개해줘서…”라며 운을 뗐다. 각종 언론에 소개되면서 쇼핑몰도 불이 났다.


10년 전 발품 팔며 알게 된 손님은 지금도 전화로 주문이 온다. 인터뷰 중간에서 틈틈이 고객들의 안부전화와 주문이 들어 올 정도다.

◇국산콩 사용, 전통방식 고집이 경쟁력

‘마트에 파는 된장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던졌다. 박 대표는 “우리집은 옛날방식대로 하지만 마트에 파는 건 다르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마트에 파는 된장 대부분은 된장맛을 내는 콩무침이다”고 말한다. 3개월만에 만드는 속성제조과정, 저가 된장의 경우 콩기름을 짜고 나서 남은 탈지대두를 섞는 점을 들었다. “대기업에선 전통제조 방식으로 만들기 어려워요. 1년이나 걸리니 경제성이 없죠”라고 말한다. 일손이 모자랄때는 마을 주민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지만, 고정직원은 어머니 이윤점 여사와 아내 허영미씨 그리고 박 대표 3명이 전부다.

철저하게 가정식으로 하다보니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조금씩 늘리다 지금은 장독 500개분을 생산한다. 한계치에 근접한 양이다.

‘찾는 손님도 많은데 대량생산하면 되지않냐’라는 질문엔 박 대표는 단호했다. “대량생산하려면 전통방식은 버려야 해요. 전통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손님이 좋아하는데 그걸 버릴 순 없다”고 말한다. 또 그는 “대량생산 체제로 가면 대기업제품과 차별화가 없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하기 어려워 진다”고 말했다.

중국산 보다 2배 이상 비싼 국산콩 사용 고집도 버릴 수 없다. “중국산은 유전자 변형콩이 많고 유통과정에서 어떤 화학처리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본인도 못 믿는 콩을 손님들에게 먹일 수 없다”는 게 두번째 고집이다.

◇대를 이어 만들고 대를 이어 먹는다

된장을 먹어본 손님은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 합천우리식품의 제품도 찾는다. 깐깐한 장맛을 인정받았으니 고객의 신뢰는 무한할 정도다. 최근엔 한 문화평론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으며 중앙일간지에서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게 한번 적응된 장맛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손님은 자식에게도 그 장을 권한다. 대를 이어 만들고 있는 합천우리식품의 된장이 고객마저도 대를 이어 먹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박 대표는 대기업의 자극적이고 속성으로 만든 제품때문에 현대인의 입맛이 변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된장이 슬로우푸드인 이유는 숙성시간을 제대로 가져야 제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장독대도 옛것이 더 맛있다며 마을을 다니며 하나씩 구입한다. 똑같은 담은 메주도 요즘 장독대에는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운이란 없다. 부가가치 높여라

“농산물 그대로 팔아봤자 인건비, 농약비 빼고 나면 남는 것 없어요.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며 박 대표는 농산물 판매자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공할 것을 조언한다. 일단 제품의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제품이 만들어졌다면 다음은 판로개척이다. 지자체의 품질인증도 획득하고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자리라면 달려가 홍보할 것을 권한다. 백화점을 다니며 단골고객을 만들었듯이 과거의 고생이 지금의 수익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객은 제품의 신뢰가 유지된다면 평생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쇼핑몰 운영, 신제품 개발 등 요즘 고객들의 요구에 맞출 수 있는 생각의 전환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합천우리식품(www.woorizang.co.kr  055-931-8889)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통 제조방식과 젊은 판매방식’이 어우러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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