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을 뒤로 한채 흐르는 강물
전쟁의 기억을 뒤로 한채 흐르는 강물
  • 경남일보
  • 승인 2012.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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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낙동강아 잘 있느냐?

▲낙동강 박진교
창문 바깥 어디선가에서 보리타작을 끝내고 보리가시랭이의 북데기를 태우는지 구수한 냄새가 가느다랗게 솔솔 날려 들어온다. 고향의 옛날 냄새가 묻어오는 창 너머엔 넝쿨장미도 흠집 하나 없이 고운 빛깔로 피었다. 코끝을 대지 않아도 벌꿀냄새가 나는 듯하다. 봄꽃들의 향기는 눈으로 맡고 아카시아꽃 향기는 코로 맡지만 유월이 오면 가슴으로 맡아야 할 향기가 있어 길을 나섰다.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를 부르며 전우의 시체를 넘고 간 그들은 지금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목 놓아 부르던 어미의 절규도, 여보라고도 불러보지 못하고 가슴만 쥐어 뜯던 아내의 통곡도, 아빠를 부르며 자지러지는 자식의 울음도 뒤로하고 낙동강아 잘 있거라는 당부만 남기고 그들이 건너간 낙동강이 보고 싶어 박진 전적지를 찾아서 차를 몰았다.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차를 내려서 의령방향으로 정암교를 지나면 의령 초입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신반과 적교를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을 하면 백산 안희재 선생의 호를 딴 백산로인 20번 국도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는 고향 가는 맛이 물씬 풍기는 길이다. 산모롱이를 돌면 작은 들녘이 나오고 들을 지나 산기슭을 오르면 꼬불꼬불 넘어야 하는 고갯길이 겹겹이 다가오는 한적한 길이다.

‘그때도 모심기를 하는 둥 마는 둥 해놓고 이 재를 넘었지. 아 둘 데리고 살끼라고.’ 진등재를 넘으면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강촌마을이 그림같이 아름다워 차를 세웠더니 산딸기를 따러 왔다는 팔순의 할머니는 말끝을 흐리더니 긴 한숨을 또 내쉰다. ‘어깨띠 두르고 양양하게 갔으믄 꼭 와야제. 그것 살고 말낀 줄 누가 알았노’ 하시더니만 더는 말을 잇지 않으셨다. 목구멍에서 화약냄새가 울컥 나더니 가슴이 찡해졌다. 가슴으로 맡아야 할 유월의 냄새이다.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한 병으로 서로의 목을 적시고 돌아서는 발길은 천근같이 무겁기만 했다. 

정곡면 소재를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야산삼거리가 나오고 좌회전을 하면 유곡면으로 이어지며 일붕사와 벽계유원지인 찰비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을 하다보면 유곡천 건너마을이 망우당의 생가마을이며, 임진왜란 때 북을 매달았던 현고수와 망우당의 생가가 있다. 세간교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부림면으로 이어지는 20번 도로이고 직진을 해 낙동강을 건너가면 창녕군으로 이어지는 1008번 도로이다. 직진을 해 경산마을에서 유곡천을 건너다보니 백산 안희재 선생의 생가마을인 입산마을이 빤히 보인다. 멀리 작은 들녘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양파를 뽑아내고 뒷정리를 하는 건지, 보리를 베어낸 그루터기를 태우는 건지 보릿겨를 태우는 구수한 내음이 날 것도 같은데 포화 속의 화약냄새가 연상되며 영화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되면서 화약내음만이 호국의 향기가 되어 가슴속으로 배어 든다.

굽어 도는 산길을 따라 야트막한 고갯마루에 차를 세웠다. 불원지간에 낙동강이 양팔을 벌리고 가로막아 서듯이 눈앞을 가득하게 채우는데 빤하게 긴 다리가 강 건너까지 이어져 있다. 예닐곱 집의 작은 마을은 인기척도 없는데 수십 길 낭떠러지의 깎아지른 벼랑이 좌우로 버티고 선 틈새를 벌리고 낙동강 강둑이 좌우를 이었고, 왕복 4차선의 박진교가 날렵하고 시원스럽게 뚫려 있다. 이 야트막한 고개를 은폐물로 삼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포탄을 쏘아댔으며 이 강을 건너려고 피아는 또 얼마나 많은 주검을 쌓아야 했던가. 박진교를 단숨에 건너기가 미안도 하고 죄스럽기도 한데다 낙동강을 만져 보고 싶어 강둑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따라 박진교 다리 밑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 강둑 초입에 차를 세웠다.

강둑의 길이는 이삼백m에 불과하지만 둑길의 너비는 이차선 도로보다도 더 넓었다. 강으로 내려가는 비스듬한 길도 잘 다듬어져 있는데 중간쯤에다 테라스를 만들어 낙동강 조망대를 꽤나 널따랗게 마련해 두었다. 찾는 이는 없어도 낙동강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며 올려다보이는 박진교의 다리는 가물가물하게 끝없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강기슭으로 내려가 강물에 손을 적셔보았다. 두고 떠난 이들이 얼마나 그리워했던 강물인가. 낙동강이 아니었더라면 부산마저 앗기고는 어디로 가야만 했을까. 낙동강을 안고 몸부림쳤던 그들은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북진을 하면서도 돌아보고 또 돌아보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다시 보마 약속했던 그 맹세는 어디 두고 강물따라 세월따라 어디로 흘러갔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었고 보지도 않았던 그들이건만 눈시울 젖게 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목 메이는 심사를 낙동강은 알겠지. 구국의 선혈이 가슴을 적시며 혈류성천이 되어 흐르는 낙동강은 아직도 못 다 푼 한을 안고 벼랑에 부딪치며 굼실거리며 흘러가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한동안 보았더니 강물이 흐르는 건지 내가 떠가는 건지 배를 탄 기분인데 벼랑 아래의 태공은 낚싯줄을 드리우고 꿈쩍도 않는데 바위 틈의 산딸기는 영롱하게 익었다.

낙동강 벼랑 끝에 무르익은 산딸기

따볼까 말아볼까 망설이는 까닭은

포화속에 산화한 못다 핀 꽃이던가

아기가 나거들랑 주라했던 선물인가.

한참만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박진교를 건넜다. 그 시절 그날의 다리는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건널 수 있는 강을 어쩌다가 그때엔 그토록 많은 생때같은 주검을 쌓아서 건너야만 했던가. 포화 속에 산화하는 처절한 젊음이며 피란민이 울부짖던 통곡의 소리를 지금은 그 누가 기억이나 하는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가기만 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종북세력이 할거하는 우리들의 일상이 죄스럽고 민망하여 목이 멘다.

 

▲전적비


다리를 건너서자 직진은 나중에 하고 박진지구 전쟁기념관이 마련돼 있다며 일곱시 방향으로 차를 돌리라고 황토색 표지판 길 안내를 한다. 불원지간에 주차장이 말끔하게 마련돼 있고 조형탑이 하늘 높이 반짝거리는 기념관 앞마당에는 장갑차와 M-47탱크 그리고 8인치 견인 곡사포가 전시돼 있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영상실과 6·25전쟁사를 시기별로 자세하게 사진을 첨부하여 설명하는 게시물이 벽면을 따라 가지런하게 붙어 있다. 피맺힌 절규가 있는가 하면 가슴 찡한 영웅담이 발길을 붙잡는데 유리 진열대 안에는 피아의 소지품들이 피와 땀에 젖고 포화에 얼룩진 채 처절했던 전쟁사를 일러주고 있다.

총탄이 뚫고 간 녹이 쓴 철모는 옛 주인을 잃고 삭을 대로 삭았는데 탄띠와 수통피는 헤지고 낡아서 형체만 남았다. 개인화기와 공용화기가 전시된 진열장 안으로 북괴군의 총기류가 낱낱이 진열돼 있다. 누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며 무엇을 위해 불을 뿜었던가. 매캐한 화약냄새가 나는 뜻하여 옷소매 속에서 소름이 돋는다. 관리자인 황성철씨가 안내한 영상실에는 박진지구의 전쟁을 고스란히 겪어온 주민들의 증언들을 영상으로 엮어서 옛이야기가 아닌 처절했던 전장으로 빨려들게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잠시 산길을 오르면 박진지구 전적비가 낙동강을 굽어보며 우뚝하게 솟아 있다. 잘 정비된 주차장을 겸한 광장 위로 조화롭게 배열된 계단을 따라 올라 전적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자꾸만 미안하다는 생각뿐인데 어느 유치원 원생들이 종이꽃을 접에서 소복하게 놓고 갔다. 하나 같이 ‘국군아저씨 고맙습니다’라고 쓰였다.

세월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덮어는 주건만 원한 맺힌 아픔은 오늘도 이어진다. 낙동강아 말하라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려 싸우다가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져 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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