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30>
오늘의 저편 <130>
  • 경남일보
  • 승인 2012.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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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어요?”

민숙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화!’ 소리를 입 밖에 떨어뜨리며 진석은 눈을 감았다. 가슴속 깊이 감격의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화성댁은 당장이라도 아이를 지워버리라고 할 것만 같아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사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 바보야! 그래서 날 피해 시골에 갔던 거야?”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뜬 진석은 민숙을 와락 끌어안았다.

“오빠가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해서.”

남편의 품에 안긴 민숙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행복이 눈물에 실려 마음껏 줄줄 흘러나왔다.

화성댁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6월이 되자 태양은 열기를 내뿜기 바빴다. 또한 땅에선 더운 입김이 훅훅 올라왔다.

진석은 학교에 사표를 냈다. 그리곤 곧장 한강둔치로 향했다. 말없는 물은 시퍼런 배를 바람에 너울거리며 잘도 흘러가고 있었다.

‘넌 뭐가 그리 잘났니? 말 좀 해 봐.’

도도해 보이는 물결을 보며 발에 걸리는 것들을 마구 찼다. 흙덩이와 돌멩이가 퐁당거리며 물속으로 사라져갔다.

‘말 좀 해 봐. 내가 뭘 잘못했냐고? 왜 하필 나야?’

자신의 가슴을 마구 두드려대던 진석은 땅바닥에 드러누워 미친 듯이 뒹굴기 시작 다. 손에 잡히는 대로 풀들을 마구 집어 뜯고 흙과 돌을 집어던지면서.

‘이제 그만 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달라지고 말 거야! 아니 새로 태어날 것이다. 내 몸의 피를 한 방울도 없이 다 뽑아내 버리고, 살은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다 발라내서라도 아버지 흔적이라면 다 버릴 거니까. 내가 나로 온전히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뼛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맷돌에 다 갈아버릴 거야.’

그는 증오에 찬 음성으로 씨우적거렸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런 용기로 배짱 좋게 사는 거야.’

그의 머리는 여유 있게 중얼거렸다.

‘이런 꼴인 나와 타협이라도 하라는 거니? 지금!’

진석은 자신의 머리를 향하여 소릴 지르다간 멍한 얼굴로 하늘을 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처음부터 없었어. 하늘이 있다면 나한테 이럴 순 없어.’

하늘에 받쳤던 멍한 얼굴을 땅으로 거둬들이며 일어났다.

진석은 바로 어제 의전을 나와 의사가 된 친구에게 문둥병이라는 확진을 받은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팔 안쪽에 붉은 반점이 보여 남몰래 고민하다 친구에게 보였던 것이다.

그 친구는 진석에게 소록도로 가라고 권했다. 왜놈들이 남의 나라를 쥐고 흔들 땐 환자들이 문드러진 손으로 강제노역을 당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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