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철 (한국국제대학교 홍보실장)
그러고 보니 저 시끄러운 녀석과 동고동락한 세월이 16년이 넘었다. 몇 번인지 모를 이사를 하면서 여기저기 흠집도 많지만, 한 번씩 바닥 수평을 맞춰주고 물때 청소도 해주건만, 사람처럼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제 이 통돌이 녀석의 소리는 일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드럼세탁기를 꿈꾸는 것인지 마지막 발악처럼 집요하게 들린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그 발악이 조강지처의 잔소리마냥 익숙하고 정겹다.
하릴없이 아무거나 사지 않는데다 30년 넘은 트랜지스터를 고무줄로 묶어 쓰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주변에는 제법 나이 먹은 녀석들이 많다. 30년 넘은 세계문학전집에 20년을 훌쩍 넘어 장식품으로 전락한 창작과 비평 전집과 컴포넌트 오디오, 비디오 플레이어, 세탁기와 함께 들어온 냉장고, TV, 그리고 15년 된 코트, 10년 된 승용차…. 지금은 용도 폐기되었을지언정 그렇게 무던하게 함께해 온 세월이 고맙고 대견하고 또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쯤 되면 이들과 이별할 때는 한낱 바늘에 조침문을 쓴 옛 부인네처럼 제문이라도 써서 넋을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됨과 새로움의 구분은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의존한다. 현재에는 과거가 녹아 있고 미래가 잉태되어 있으며, 미래는 새롭게 보일 뿐 이미 과거와 현재가 내장된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오래됨에는 지난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연민과 애정이,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동경과 설렘이 내재되어 있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지 모르겠다.
오래된 세탁기 소리에 논어의 온고지신을 떠올리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새로운 것은 오래되고 낡은 것의 상대적 개념일 뿐이고, 옛것을 품어야 새것이 잉태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마냥 불변할진대 우리는 오래됨을 낡음으로만 관념 지우고 새로움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방성철, 한국국제대학교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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