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32>
오늘의 저편 <132>
  • 경남일보
  • 승인 201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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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는 안 돼. 차라리 학동으로 가라.”   

 마루 끝에 서 있던 동숙이가 재빨리 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소록도로 간다는 건 곧 완벽한 단절을 의미한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진석은 한번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누이 집에서 나왔다.

 “따라가서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와라.”

 여주댁은 아들이 너무 담담해서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진석이가 먼저 대문을 나가고 그 뒤를 동숙이가 밟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여주댁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뒤에 누이가 따라오는 것을 눈치 챈 진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건 따라붙는 그 이유가 너무 잘 보이고 있어서일까.

 ‘최소한 오늘은 죽지 않을 테니까 그만 돌아가라고 해야 할까?’

 콧마루가 시큰해 옴을 느끼며 진석은 그냥 계속 걸었다.

 움찔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던 동숙도 계속 동생 뒤를 밟았다. 그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선 소리 없는 한숨이 자꾸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제 오세요? 좀 늦었네요.”

 불룩한 배를 이끌고 골목어귀까지 나와 있던 민숙은 진석을 보곤 반색했다.

 “맹꽁이 아주머니 그 날씬한 몸매 자랑하려고 여기까지 나왔나요?”

 울컥 치솟는 아픔을 농담으로 버무리며 진석은 어이없는 웃음을 입가에 쿡쿡 찍어 발랐다.

 ‘헛, 쟤들 이제 어떡하면 좋아?’    

 둘을 지켜보던 동숙은 발길을 돌리며 탄식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진석은 빨리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영양가도 없는 남편의 이야기들을 좀 들어주던 민숙은 내일 출근할 남편을 위하여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기를 재촉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올 것이 오고야 말았으니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말할까?’

 진석은 민숙의 맑은 얼굴을 보며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한테 꾸벅꾸벅 절을 할 거에요?”

 민숙은 더는 앉아있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먼저 드러누웠다.

 “허허, 그럴까? 그 동안 아이들한테 절을 받기만 했는데 한꺼번에 다 갚아줄까?”

 진석은 헛웃음을 뿌렸다.

 “할 말이 더 있는 건 아니죠?”    

 민숙은 졸음이 짓누르는 눈꺼풀을 게슴츠레 뜨며 진석을 보았다.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자면서 들어.”

 진석은 민숙이가 졸고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알았어요. 난 잘 테니까 오빤 계속 이야기하세요.”

 이윽고 민숙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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