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대통령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이명박대통령의 귀거래사(歸去來辭)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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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어느 날 몇 개월 후면 이웃으로 재회하게 될 고향마을 사람들과 만났다. 노 대통령은 “저의 또 하나의 행복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재임기간 나라와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준 사고를 낸 적이 없으니 다행스럽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러나 그의 임기말년에도 대통령 측근이 신정아라는 여인과 만들어낸 스캔들의 여파와 국세청장의 뇌물사건, IMF로 인해 모처럼 형성된 사회통합의 붕괴, 흐트러진 공직기강은 여느 대통령의 집권말기와 다를 바 없었다. ‘대과없이’라는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실망한 국민들이 많았던 것도 그런 상황 때문이었다. 그도 퇴임 후에는 비자금 문제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똑같은 전철을 밟아왔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엄청난 정치자금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최근 노태우 대통령은 병상에 있으면서도 동생을 상대로 재산반환 소송을 제기해 또 한번 인구에 회자됐다. 그는 회고록을 쓰면서 집권기간에 조성한 비자금 2628억9000만원 중 못 갚은 519억원이 못내 걸려 동생에게 맡긴 재산을 되찾아 갚으려 한다고 기술했다. 숨겨진 사실, 선택의 기로에서 비켜갈 수 없었던 순간들, 인간적 고뇌, 알려지지 않은 업적들을 알리며 서산을 붉게 물들이지는 못할망정 국가에 진 빚도 못 갚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군사독재를 타파하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이 비리와 연루돼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김영삼 대통령도 현철씨 게이트에 할 말을 잃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측근들의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끝간데 없었다.

다시는 그런 불행한 역사를 쓰지 않겠다던 이명박 정부, 과거 어느 정부보다 무결점, 돈에 관한 한 완벽하다던 이 정부도 집권말기를 맞으면서 또다시 전 정권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형이다. 그는 이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수억의 돈을 건내받아 뇌물성 여부와 대선자금으로 쓰여졌는지에 대한 법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가 개입된 민간인 사찰이 이 정권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됐고 나름대로의 치적은 빛을 잃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내곡동에 사저를 짓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를 예정이었지만 그마저 의혹에 휩싸이는 형편이 됐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도 과거 대통령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런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의 말년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고소영’에서 ‘영일대군’에 이르기까지 설마가 현실로 나타난 현실에서 더 이상 기대는 힘들게 된 것이다. 벌써부터 레임덕 현상이 생겨 청와대에서부터 사람이 떠나고 정치권은 호재를 만난 양 들끓고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불거진 ‘영일대군’의 뇌물이 대선자금으로 쓰여졌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수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마치 5년 전, 10년 전, 거슬러 올라 20년 전의 현상을 연상케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을 둘러싼 비리는 어김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과없이 임기를 마치게 돼 다행스럽다.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라고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귀거래사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생을 상대로 재판을 걸어 모양새가 아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형의 비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이래저래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대선열기가 거세게 불고 있다. 출마인물들의 얼굴에 전직 대통령들의 얼굴이 오브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그들 주변에는 또 다른 ‘영일대군’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야말로 깨끗한 정치로 임기말 서산을 붉게 물들여 국민들이 퇴임을 아쉬워하는, 우리의 정치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우리도 단 한번만이라도 무결점·청정대통령을 뽑았다는 자부심을 가져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불행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쓸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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