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34>
오늘의 저편 <134>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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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 한 번도 거창한 삶을 꿈꾸지 않았다. 자라는 아이들을 위하여 그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전달해 주면서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싶을 뿐이었다. 남을 미워한 적도, 헛된 욕심을 부린 적도, 도적질한 적도, 남의 여자를 탐한 적도, 불타와 예수를 비난한 적도 없었는데 그는 이렇게 벌을 받고 있었다.

급기야 진석은 아버지가 숨어 지내던 그 굴속으로 쑥 들어갔다.

‘자식까지 끌어들인 감상이 어떤가요? 가슴이 부서지나요? 속이 시원한가요? 죽어버릴 거예요? 양팔 활짝 벌리고 기다리세요.’

진석은 두어 평 남짓한 그곳에서 흡사 간질발작을 하듯 마구 뒹굴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라도 하세요.’

진석의 뒤를 몰래 따라온 민숙은 굴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비를 잉태한 먹구름 한 덩이가 장마철을 예보하며 뜨거운 햇살을 살짝 가려주고 있었다.

‘내 딸이 법관 사모님!’

화성댁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또 입가에 웃음을 찍었다. 그녀는 중닭을 잡아 제법 통통한 인삼뿌리와 대추를 넣어 삼계탕을 끓였다.

민숙을 시집보내고 홀로 쓸쓸히 지내고 있던 화성댁은 말 그대로 요즘 살맛이 났다. 시집간 지 오년 만에 아이를 가진 딸의 모습도 볼수록 뿌듯했거니와 고등고시 준비를 위해 학교에 사표를 낸 사위의 용기도 마냥 좋았다.

진석은 어릴 때부터 영특하기로 학동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화성댁도 고등고시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위라면 해낼 것 같았다. 법관 부인이 된 딸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별안간 어깨가 으쓱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딸의 집을 보면서 화성댁은 무심결에 픽 웃었다. 여주댁과 머리끄덩이를 집어 뜯으며 싸웠던 그 일이 눈앞에서 돋아나고 있었기에.

‘그래, 대문 안에만 살짝 넣어주고 가자.’

굳게 잠겨 있는 딸의 집 대문 앞에 선 화성댁은 들고 있던 삼계탕 냄비를 보며 목을 끄덕였다.

민숙은 진석의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겠다고 했다. 외부인의 출입을 무조건 사절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어쨌든 진석에게 절간처럼 조용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가 간다고 했잖아요?”

어머니를 본 민숙은 제바람에 긴장했다. 그랬다. 민숙은 화성댁의 출입도 금하면서 하루에 한번은 꼭 친정에 들리곤 했다.

“하절에 공부하느라 김 서방 몸 상할까 싶어 이거 좀 끓였다. 몸이 무거운 너보다 이 어미가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왔다.”

화성댁은 변명이라고 늘어놓듯 장황하게 말하곤 선걸음에 몸을 돌렸다.

‘어머니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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