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대한 단상
담배에 대한 단상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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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철 (한국국제대 홍보실장)
어머니를 찾아뵈러 본가에 간 날. 며칠 전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많이 피우지 마라”는 당부와 함께 면세점에서 산 담배 한 보루를 내놓으셨다. 지난해 폐암수술을 하고, 1년을 꼬박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가시는 어머니께서 자식에게 담배를 선물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다시 금연 계획은 딜레마에 빠졌다.

어머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는데도 폐암 진단을 받으셔서 그런지, 친척 가운데 백수를 누리신 분이 담배를 피우셔서 그런지….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형님도 아예 담배를 배우지 않은 집안 내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되어 담배를 배운 못된 막내에게, 어머니는 동네에 초상이 나거나 하면 어김없이 담배 몇 갑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곤 하셨다. 그렇게 담배는 해악의 유무를 떠나, 어머니에게는 어느덧 성인이 된 막내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성애의 매개체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담배는 어떤 이에게 모성애로 치환되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그야말로 암적인 존재, 백해무익한 해악의 대명사로 불문가지이다. 따라서 요즘은 금연에 대한 화두가 흡연 욕구보다 강하게 다가오고, 흡연자는 미개인 취급을 받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 옛날, 아니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담배는 권위와 멋의 상징, 만병통치의 위엄과 영예를 지니고 있었다. 과거, 약인지 독인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 담배의 거침없는 유혹은 시공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애연가들의 담배예찬은 가히 종교적 엑스터시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실제 생채기를 담뱃가루로 감싸고, 구충제를 대신했다는 옛 어른들의 증언이 아직 생생하다. 또한 장죽이 됐든, 곰방대가 됐든, 시가든, 궐련이든 권위와 위엄의 상징으로 남성미를 부각시켰다는 긍정의 수사도 얼마 전까지는 유효했다.

그러나 과학에 의해 잠재된 해악이 드러난 지금, 현실에서 담배의 위상은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하다. 이제는 호불호의 기호적 선택도 용납되지 않을 뿐더러 고단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예술가에게 새로운 영감과 정신적 자양분, 멋과 문화를 만들어준다는 순기능의 분리의식도 부질없다. 그리고 지방세 건전성에 기여한다는 발악마저도 흡연권을 인정하지 못한다.

서울 출장길, 금연구역과 과태료 부과라는 경고문이 빨갛고 진한 고딕체로 길거리에 도열해 있다. 버스정류장에도, 지하철 역사에도, 그리고 ‘담배꽁초 투기 단속’이라는 플래카드까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마냥 펄럭인다. 이제 담배와 애연가들은 반론과 소명의 기회도 없이 ‘길 위의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쯤 되면 흡연 욕구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누구의 첫사랑 이름과도 같은 ‘금연’에 중독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방성철 (한국국제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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