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브레이크, 환경규제의 의의
우리 사회의 브레이크, 환경규제의 의의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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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지난 4월 18일 합천군에서 KBS 드라마 ‘각시탈’의 출연자들이 타고 있던 대형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논 아래로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있을까. 있을 수가 없다. 자동차에서 가속장치보다 제동장치가 더 중요하다. 다만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을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규제는 공동의 이익을 지키고, 사회의 파국을 막는다.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기능이다. 규제정책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안전판을 잃게 된다. 육성정책과 규제정책이 제 역할에 충실할 때 보다 나은 사회로 나갈 수 있다.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환경·노동·안전분야는 규제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일수록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특히 환경규제는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적절하게 설계된 환경규제는 기술혁신을 가져와 생산성을 높인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른바 ‘포터 가설(Porter Hypothesis)’이다. 포터 교수는 일본의 화학산업 등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된 과정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이 짧은 기간 동안 국제경쟁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환경부의 자동차 배출기준 강화정책이 큰 역할을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단기간 내에 산업화를 일구어냈다. 세계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한 환경정책 선진국이기도 하다. 폐기물 재활용을 극대화하는 쓰레기 종량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물 관리에 있어서도 상·하류 지자체 합의에 바탕을 둔 유역관리 체계를 안착시켰다. 이 외에도 우수한 환경정책 사례는 많이 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떤 환경규제가 필요할까. 많은 미래학자들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탄소경제가 저물고 조만간 새로운 경제체계를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인류 공동의 노력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 달 말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 20 정상회의’의 주제가 ‘녹색경제’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전 세계가 녹색경쟁(Green Race)을 벌이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 탄소경제 시대에 일군 성과였다면, 지금은 탄소경제 이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연료와 원료를 많이 쓰고 오염물질도 많이 배출하는 경제에서 벗어나 자원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환경도 보전하는 혁신적인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온실가스 다량 배출업체를 대상으로 ‘목표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목표보다 더 많이 줄여도 인센티브가 없고, 적게 줄여도 최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되므로 업체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이유가 없다.

이와 달리 배출권 거래제도는 온실가스 감축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녹색산업과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배출권의 거래·이월·상쇄 등 유연한 제도운영으로 온실가스 감축비용을 43~68%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행히도 지난 5월 관련 법안이 제18대 국회를 통과했고, 정부는 2015년에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올해 말까지 시행령을 마련할 계획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환경규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환경규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발판’을 만든다. 특히 수출중심의 한국경제는 국제환경규제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당장은 조금 힘들더라도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하게 하는 길을 미룰 수는 없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환경규제는 우리 사회의 ‘브레이크’다. 멈춰서야 할 때 멈추게 하고, 이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한다. 환경규제를 보다 현명하게 만들어서 더욱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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