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37>
오늘의 저편 <137>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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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부인 아니세요?”

딸에게 밀려 몸을 집으로 돌리던 화성댁은 바로 코앞까지 와 있는 여주댁을 보고 놀랐다.

“아, 예.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사실은 빨갱이들의 총성에 놀라 허연 눈을 까뒤집으며 서울을 잽싸게 빠져나온 여주댁이 먼저 화성댁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진석의 발병사실을 모르고 있을 안사돈한테 무조건 미안해서 숨을 죽인 채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와! 우리 올케 몸 많이 불었네.”

어색한 얼굴로 화성댁에게 인사를 올린 동숙은 민숙의 배를 보며 감격스런 표정을연출했다.

“댁으로 가시는 길이시죠. 그럼??.”

여주댁은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 대신 화성댁에게 길을 터주듯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난리가 났다고는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돈끼리 선 채로 이러는 법이 아니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넌, 뭐하고 서 있니? 김 서방한테 모친이 오셨다고 알리지 않고.”

잠깐 안으로 들어가자고 할 줄 알았던 화성댁은 좁은 속이 푸르르 끓어올라 딸에게 화풀이를 했다.

“아, 예.”

민숙은 얼굴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아니다. 아가, 들어가서 보면 되는데 공부하는 사람 머리 시끄럽게 할 거 뭐 있니?”

여주댁은 대강 둘러대며 며느리의 손을 안으로 이끌었다.

“예. 어머님, 형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민숙은 화성댁의 눈을 따돌리듯 하며 시집 식구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안으로 잘도 사라졌다.

‘썩을 년, 이래서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걸까?’

집으로 향하며 화성댁은 입을 쑥 내밀었다.

‘난리가 났는데 고등고시는 제때 치룰 수 있을까?’

화성댁은 앞뒤 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난리소식부터 급히 전해야 할 판국에 웬 시험공부타령인가 말이다.’

목을 갸웃했다.

‘분명 뭔가 있어!’

체머리를 흔들었다. 딸년 부부가 학동으로 온 뒤 사위의 얼굴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화성댁의 의혹을 부채질했다. 오던 그날 밖에서 얼굴을 잠간 본 것이 다였다.

‘사내대장부가 뜻을 정했으면 이루기 위해 1분 1초도 아껴야 하겠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아냐. 한번 정도는 둘이 나란히 와서 정식으로 귀향신고식을 할 법도 하지 않은가?’

사립문으로 들어서다 말고 화성댁은 몸을 돌렸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의혹을 떨어버리듯 또 머리를 흔들었다.

‘허허, 내가 이 무슨 방정맞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멀쩡한 두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면서 왜 생가슴을 긁어대기부터 하냐 말이다.’

주제모를 웃음을 흩뿌리며 화성댁은 자신의 머리를 쿡 쥐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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