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38>
오늘의 저편 <138>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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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보따리를 다 꾸린 정자는 사립문으로 목을 길게 빼곤 했다. 남편의 새 여자인 화심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둘이 동거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여자가 남편의 돈을 보고 들락거리는 눈치였다.

“엄마, 아빤 왜 안 와? 우리 아빠한테 서울 가. 응?”

영문을 모르는 순희는 정자의 치맛자락을 잡아 이끌며 떼를 썼다.

“순희야, 우리 외갓집에 가 있자. 그러면 아빠도 그곳으로 오실 거야.”

정자는 친정에 가 있겠다는 쪽지를 문틈에 끼워 놓고는 딸의 손을 잡았다. 집을 나서려다 말고 불현듯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할머니!’

쓸쓸한 방안에서 물씬 느껴지는 할머니의 체취에 정자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와! 외할머니 집에 가는 거야?”

정자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7일 새벽 2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서 야반도주하여 대전으로 향했다. 절대로 수도 서울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대한민국 사람이 서툰 한국어로 잘도 연설해 놓고는 그랬다.

같은 날 오전 8시 인민군은 의정부를 짓밟고 수도인 창동까지 진격해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서울시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더욱이 그날 오전부터는 우리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있다는 허위사실과 함께 대통령도 꼼짝하지 않고 서울을 지킬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도록 기가 막히는 건 그 담화문을 발표한 장소가 대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인민군이 쳐들어온 지 삼일 만에 서울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6월 28일 새벽 3시 무렵 우리 국군은 한강 다리를 폭파해 버렸다. 인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 눈물의 자구책이었다.

최고자의 담화만 믿고 서울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오지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서울에서 어정버정하고 있던 형식이도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피난길에 오른 학동마을은 쓸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진석과 민숙 그리고 화성댁은 마을에 남아 있었다. 민숙은 남편을 두고 떠날 수 없었고 화성댁은 딸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빨갱이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서울에선 붉은 완장을 두른 자들이 미쳐서 날뛰기 시작했다. 어제까지의 친구를 죽이기 위한 발광인지 살아남기 위한 지랄버릇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깊은 밤 한강나루로 간 형식은 어렵사리 나룻배를 구해 서울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라니까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형식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새 여자인 화심에게 화를 냈다.

“이년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자꾸 그러세요?

화심은 코맹맹이소릴 내며 징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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