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펀치 볼 국립묘지를 찾아서
하와이 펀치 볼 국립묘지를 찾아서
  • 경남일보
  • 승인 2012.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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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몇 년 전 하와이 펀치 볼 국립묘지를 탐방할 기회를 가졌다. 타이페이 공항에서 출발할 때는 12월 말의 한겨울이었는데 하와이에 도착하니 늦은 여름날이었다. 첫날 오후에 호놀룰루 고지대에 위치한 펀치 볼(punch bowl) 국립묘지를 찾았는데 분지 같이 생겼다 해서 펀치 볼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이곳은 알링턴 국립묘지와 함께 미국의 양대 국립묘지이다. 이곳에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의 전사자와 1, 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가 묻혀 있으며 한국전 참전용사 1240명과 860여 명의 무명용사가 안장되어 있다.

하얀 대리석의 위령탑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여신상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우리 일행은 한국전 참전용사의 묘비에 헌화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 대한민국으로 달려와 우리나라를 수호하고 전사한 영령들께 감사를 드렸다. 이곳은 묘지라는 느낌보다 마치 공원 같은 느낌을 주는 편안한 휴식처 같았다. 묘비는 수직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땅속에 평면으로 묻혀 있었고 생전의 직위나 계급에 구분 없이 모두가 똑같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1986년 우주를 향하다가 공중폭발로 사라져버린 챌린저호 승무원의 유품이 이곳에 묻혀 있었고 묘비 앞에는 이슬에 젖은 칸나가 고인을 애도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착 첫날의 숙소는 와이키키 해변 옆의 호텔이었는데 호텔에서 바라보는 와이키키 해변은 이국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저녁시간에 우리 일행은 와이키키 해변 노상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해변 주위를 구경했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윽한 달빛과 철썩이는 파도소리뿐 주변은 조용했다. 다음날 아침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로 달려간 곳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폭격으로 침몰한 전함 아리조나호가 반쯤 물에 잠긴 채 그대로 있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적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지난 뼈아픈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리조나 전함은 이곳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차는 계속 달려 태평양의 푸른 파도를 가르는 윈드서핑 세계대회가 열리는 명소 옆의 언덕에 도달하자 하얀 성(城)이 보였다.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성이 아니고 오래 전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으로 그가 연인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1960년대 엘비스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블루 하와이’ 촬영무대가 바로 여기라고 귀띔해 준다. 하와이를 떠나면서 창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지개 사이로 펀치 볼 국립묘지가 조그맣게 보였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상념과 함께 6·25 전쟁 당시 3만7000여 명이 전사하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지켜준 미국과 미국 국민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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