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소통과 기다림이다
교육은 소통과 기다림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훈 (객원논설위원,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비록 몇 포기가 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고추농사는 실패했다. 작년에는 농촌으로 이사한 첫 해라 주변 정돈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엄두를 못냈지만, 올해는 주변 여건을 봤을 때 가장 손쉬운 작물이 고추겠다 싶어 작심하고 밭을 일궜다.

초보 농사꾼으로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더욱 열심히 했다. 그러나 장마가 지나자마자 잎사귀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틀 사이에 주렁주렁 달린 풋고추마저 시커멓게 색이 변하며 모조리 떨어지고 말았다.

전업농부가 아니어서, 고추농사에만 목을 매는 직업농사가 아니어서 이것으로 받은 충격이야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분들보다는 덜했지만 나름대로 그 낭패감은 무척이나 컸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한동안 밭 근처에도 가기가 싫을 정도로 스스로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현상으로 나는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 실패한 농사에 대한 재도전은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품이야 재료를 넣고 기계만 돌리면 언제라도 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농산물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의 탄력성이 낮아서 정책적으로 가격유지 정책을 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사회선생님이었던 나는 이를 몸으로써 체득하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패의 참담함을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교육에도, 자식농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인 것이다.

얼마 전에 생명존중 시민포럼에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Live Together! 생명토크’ 첫 번째 이야기라는 토크콘서트를 했다. 스웨덴에서 국가교육청 고위 관료로 20년 이상 봉직하고 이번에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으로 오신 분이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스스로가 외모는 한국 사람이지만 생각은 스웨덴 사람이라고 소개하신 이야기 손님은 한국의 학교폭력 현실을 심각하게 걱정하면서 그 원인으로 학교와 가정과 학생 상호간의 소통부재를 강하게 지적하였다. 스웨덴은 저녁시간에 거의 모든 가정은 온 가족이 같이 밥을 먹고 아이들 숙제도 돕고 자녀들의 고민도 들어주며 생활한다. 1년 365일이 한결같다고 하였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침에, 그것도 가족들 모두가 무엇에 쫓기듯이 아침식사를 해치우고는 뿔뿔이 흩어져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가정은 얼마나 되는가. 아이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해 본 적은 있는가. 그냥 윽박지르듯이 한마디 내뱉으며 “나는 학교 다닐 때 안 그랬어”, 이 한마디로 아버지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그 분은 이런 말도 했다. 스웨덴은 한 학기에 한두 번 담임교사와 부모와 학생이 삼자간 대화의 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지고,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의 행동과 학교에서의 활동이 다를 수 있고, 이는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대화를 하지 않고는 감지가 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 필자가 학교에 있었을 때 문제를 일으킨 아이의 부모를 학교에 모셔서 아이의 행동에 대해 설명을 하고자 하면 대체로 “우리 아이가 그럴 줄 몰랐다, 아닐 것이다, 친구를 잘 못 만나서 그렇다”고 하며 놀란다. 이것도 결국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현상이다.

앞에서 언급한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돌린 설문지에 따르면 학부모는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고 여기지만 아이들은 그것이 대화가 아니라고 한다. 부모는 대화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대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아이들이 봤을 때 그 대화는 일방적이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대화는 상호작용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어른들은 이런 훈련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

농사는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한 번의 시행착오는 일 년을 기다려야 만회할 수 있다. 누구 말마따나 계절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교육도 한 번 잘못하면 단기간에 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농사와 비슷하다. 교육도 농사처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우리의 대화문화도 스웨덴의 그것처럼 소통하고 들어줄 줄 아는 어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종훈 (객원논설위원,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