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3>
오늘의 저편 <143>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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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은 아버지 김 씨가 숨어 지내던 그 굴속으로 들어갔다, 민숙이와 화성댁은 바로 그 옆의 굴속으로 몸을 숨겼다.

밤이 깊은 덕택인지 주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짙은 구름 사이로 숨어다니던 달은 어느 샌가 남쪽하늘로 미끄러져 있었다.

집으로 내려와 먹을거리를 챙기고 있던 화성댁은 일체의 동작을 중단하며 귀를 바짝 세웠다. 홀몸도 아닌 딸년이 십리는 더 들어간 눈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여간 급한 것이 아니었다.

“종간나 쌕끼 날래날래 찾아 보라요.”

“내래 찾고 있슴다.”

‘설마 저 어린것들이 인민군일까?’

바로 옆집에서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를 엿들으며 화성댁은 눈을 홉떴다. 첫 번째 목소리는 이제 막 변성기를 거친 듯 목청이 두꺼웠다 가늘어졌다 했고 두 번째 목소리를 아직도 변성기 고개에 들어서지도 못했는지 소년기 어린 미성에 가래 끼는 음성이 섞이고 있었다.

“뉘기가 이팝 찾으라 했음둥? 갱기(감자)라도 날래 찾아보라우.”

첫 번째의 목소리가 또 울림과 동시에 솥뚜껑 열어젖히는 소리가 울렸다.

‘쯧쯧, 며칠은 굶은 모양이군.’

화성댁은 무심결에 혀를 찼다. 옆집 사이에 있는 담벼락 쪽으로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헛! 아이고 세상에??.’

담 위로 조심스레 목을 빼 올렸던 화성댁은 무심결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민군 복장의 소년 두 명을 보고 기절할 뻔했던 거였다.

‘무서운 놈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것들까지 전쟁에 끌고나오다니?’

전쟁터에 보내놓고 애태울 그 부모를 생각하며 그녀는 넋두리를 하듯 중얼거렸다.

“이것이 무스기 소리임둥?”

좀 큰놈이 화성댁의 방향으로 귀를 세웠다.

“조기서 에미나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슴매.”

작은놈이 목까지 올라오는 총을 가로로 들어 올리더니 여차하면 난사하겠다는 듯 이리저리 겨냥해댔다.

‘아니 내가 지금 제정신이야?’

비로소 적군을 동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화성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리를 바짝 굽히고는 헛간으로 괭이걸음을 했다. 이대로 있다간 철없는 인민군들의 손에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판국이었다. 이 꼴 저 꼴 더 안 보려면 이럴 때 죽는 것도 기회려니 여기면 되겠지만 팔자가 더럽게 사나운 딸년을 두고는 눈도 마음대로 감을 수가 없었다.

인민군 둘은 이미 화성댁의 집으로 담을 훌쩍 넘어왔다. 남한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적대감부터 불뚝거리는 것이었다.

둘은 안방과 건넌방 문을 번갈아 마구잡이로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냄새나는 신발을 누가 집어갈까 봐 그러는지 신발을 신은 채로 방 하나씩을 점령한 그들은 총구 끝의 단검으로 이불 등을 쿡쿡 찔러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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