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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숲 지나 암벽 사이로 지친 마음 달래는 길(29)고견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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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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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사.

후텁지근한 날씨가 사람들의 인내심을 저울질하고 있다. 선풍기를 코앞에 끌어다 놓고도 손바닥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는가 하면 에어컨 앞에다 얼굴을 디밀고 오지랖을 털어대며 찬바람이 더 세게 안 나온다고 투덜댄다. 안 좋은 소리를 들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눈치 없이 한소리 했다가는 화약고 폭발이다. 시장 갔다온 안사람들이 그러하고 퇴근해 온 바깥양반이 그러하고 이력서 들고 나갔다 돌아온 딸이 그렇고 아들도 그렇고 주식동향 살피던 아저씨들도 그렇고 TV뉴스를 보던 아버지들도 그렇다.

그런데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며 잘난 척했다간 귀싸대기는 타작마당 될 판이다. 원칙도 기준도 없으며 질서도 깨어졌고 체통도 박살났다. 온통 세상천지가 안하무인에 기고만장이고 무법천지에다 요지경 천국이다. 도로가 제 아무리 종횡으로 뚫리면 뭐하나, 사람 사는 길이 뚫려야지. 여의도의 잘 나가는 이들은 판도라의 상자이고 쾌도난마를 행하는 이가 없으니 갑갑하고 답답해서 길을 묻고자 최치원 선생의 은행나무 그늘에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를 한자리에서 알현할 요량으로 고견사를 찾아 길을 나섰다.

88고속도로 가조 IC에서 차를 내려서 요금소를 빠져 나오면 사방으로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솟아올랐는데 유별나게도 봉우리 끝이 회색 빛깔의 커다란 바위가 하늘을 힘껏 떠받고 솟구쳤는데 고견사 안내판은 일찌감치 길목에 나와서 찾는 이를 정중히 안내하고 있어 길을 물을 일은 없다. 산길 초입에 들어서면 비탈도 아닌 완만한 길은 잘 포장이 되어 있고 고견1교를 지나서부터는 계곡은 태초의 모습으로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의 촘촘한 사이사이로 도란거리며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가 정겹기 그지없다.

포장이 잘된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까 시원하게 물 한 쪽박을 들이켜라고 약수대가 먼저 반긴다. 고견사까지는 쉬엄쉬엄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데 가파르지 않아서 등산장비가 아니라도 충분하다고 매점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일러주시기에 홀가분한 차림으로 산길을 접어들자 계곡을 발 아래에 두고 비스듬하게 산허리길로 접어들면서부터 계곡 아래와 건너편은 온통 낙락장송이 울울창창하고 머리 위로는 서어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가 아름들이 소나무와 함께 기암괴석의 바윗돌들을 얼싸안고 마음껏 푸르렀다.

건너편엔 암벽이 허옇게 속살을 드러내며 수십 길 낭떠러지를 이루는가 싶더니 이내 한줄기의 폭포수가 눈을 놀라게 한다. 폭포의 높이는 30여m라지만 가늠할 수가 없고 물줄기는 하얀 암벽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데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날씬한 몸매에 긴 꼬리 끝을 힘차게 휘저으며 암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듯하다. 백룡의 승천인가, 비룡의 비상인가. 비단을 드리운 듯 하얀 물줄기는 어찌 보면 내리꽂히는 것 같고 어찌 보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데 굉음이 날 듯한 폭포소리는 울창한 수목이 걸러내는 것인지 소리조차 부드럽다.

 

▲고견폭포



폭포를 지나면 크고 작은 바윗돌이 여기저기서 온갖 형상으로 불쑥불쑥 불거져 나와서 길손을 지켜본다. 그만하면 무던하다는 두루뭉술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까불지 말라면서 연방이라도 옆구리를 쿡 찌를 듯이 날을 세운 녀석하며 바동대며 사는 것이 안쓰럽다는 듯이 측은한 표정을 짓는 듯한 바위하며 제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 같은데 딱히 변명할 말이 없어 그저 바람소리, 물소리, 산새소리만 들으면서 걷기만 했다. 그 옛날 원효는 무엇을 구하고자 심산유곡의 이 너덜겅을 걸었으며 의상은 또 무엇을 더 깨닫고자 이 바윗돌을 수없이 밟았으며 고운은 더 무엇을 익히려고 이 징검다리를 건넜을까? 혜안의 길인가? 구도의 길이던가? 탁발승은 무엇을 바랑에 담고 이 바윗길을 오르내렸으며 수많은 중생들은 무엇을 빌고 또 무엇을 얻고자 이 개울을 천년을 넘게 건넜단 말인가?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도 한데 바닥에 깔린 돌이 천년세월에 닳아서인지 계곡을 따라 길인 듯 아닌 듯 길은 이어지고 계곡의 맑음 물은 자잘한 웅덩이를 층층이 이루며 청아한 소리를 부지런히 내면서 바윗돌을 감싸며 거침없이 흐른다.

솔숲 사이로 우쭐우쭐한 기암괴석은 누구의 작품이며,

아찔한 암벽 위의 독야청청 푸른 솔은 누구의 기개이며,

바위 틈을 감돌아 흐르는 물소리는 누구의 노래이며,

솔바람 소리 사이로 들리는 산새소리는 누구의 시입니까?

짙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기와지붕이 얼핏 보이더니 어느새 우두산 고견사라는 현판이 붙은 절집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팡이를 꽂았다는 몽통 6m가 넘는 천여년의 수령인 커다란 은행나무 뒤로 서기 667년 원효와 의상이 창건하여 원효가 전생에 보아왔던 곳 같다 하여 이름 붙인 고견사는 우두산의 의상봉 바위봉우리 끝자락에 고즈넉하게 내려앉아 천년세월의 긴긴 역사를 오늘에 잇고 있다.

심산의 절집이 생김새야 엇비슷하다만 대웅전 마당 한가운데 깎아서 다듬은 장방형의 커다란 반석이 별스러워 한참을 보고 섰으니까 무상 스님이 대웅전을 가리키며 절을 하는 돌이라며 배례석(拜禮石)이라고 일러준다. 천년세월을 두고 수많은 중생들이 빌고 빌어서 배례석은 바닥이 닳아서 반들반들하다. 아무도 없는 이참에 나도 한번 실컷 빌어 보자고 배례석에 올라서니 덩그렇게 높이 솟아 활짝 열린 대웅전 문 안으로 삼존불이 금빛을 번쩍이며 굽어보고 계셨다. 얼른 합장하고 오지랖을 고쳤다. 불전함도 없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열심히 절만 하며 큰 맘 먹고 욕심대로 무릎이 아프도록 실컷 빌었다.

 

▲대웅전 배례석


‘이 땅의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게 내버려 두시고 젊은이들이 욕심껏 배우고 열심히 일 할 수 있게 하여 한없이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교도소는 이용객이 없이 텅텅 비워져서 관리인이 그저 청소나 하게 내버려 두시고 찾는 사람 없어서 병원은 문을 닫게 하여 주시고 저승길 재촉 말고 순서대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만하면 폼 나게 빌었다 싶어 돌샘의 석간수를 한 바가지 들이켜고 나니 등줄기의 땀이 일순간에 차가워졌다.

보물 1700호인 동종과 석불을 둘러보고 대웅전 뒤를 돌아가니 깎아지른 절벽 위에 양각된 좌불상이 천년하고도 수백년 세월의 사바세계를 지켜보고 계셨다.

무상 스님이 일러 주는 대로 석좌불을 돌아서 산길을 따라 한참 오르니까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가물가물하게 깎아지른 바위 하나로 된 의상봉 바위 밑에 중생에게 베푸신 옥수의 천연샘이 파여 있고 수위 한 뼘 남짓한 깊이로 석간수가 흐르고 있었다. 마련된 쪽박으로 한 바가지를 들이켰다. “올라가서 물을 마시고 천년을 살면 어떻게 하지요?” 했더니 자연이 만든 천연샘이라며 지난 정초에 찾는 이들을 위하여 샘을 청소하려고 쪽박으로 부지런히 물을 퍼내는데 줄지를 않아서 있는 힘을 다해서 잽싸게 퍼내어도 줄지 않아 예닐곱 됫박 될까 말까 한 샘물이 왜 이러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퍼내도 마찬가지였단다. 천천히 퍼내면 천천히 차오르고 바삐 퍼내면 바삐 차오르는 의상봉 천연샘. 의상이 베푸신 두터운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배려’이다. 급하면 급한 대로 더디면 더딘 대로 서로에게 걸 맞은 배려만이 ‘길’ 인 것이다. 천연샘의 물을 다시 한 바가지 떠서 쭈-욱 들이켰다. 수목에 가려진 틈새로 의상봉 바위 꼭대기 위의 하늘은 더욱 파랗고 청명하였다.

▲의상봉 천년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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