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4>
오늘의 저편 <144>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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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졸아붙을 대로 붙어버린 화성댁은 쿵쿵 뛰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숨을 죽였다.

그들의 발소리가 이젠 좁은 마루에서 울렸다.

화성댁은 귀신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뒷담으로 장소를 옮겨갔다. 손바닥 크기의 텃밭이 상치를 키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밭고랑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납작하게 엎드렸다. 발밑에 김장김치 항아리 뚜껑의 촉감이 느껴졌다.

부엌과 헛간을 다 뒤진 그들은 허탕을 쳤다는 표정으로 사립문을 향하여 걸어 나갔다.

화성댁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돌연 그들 중 한 명이 몸을 돌렸다. 헛간 모퉁이와 담벼락 사이에 시커먼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었다. 다른 한 명도 몸을 돌렸다.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은 화성댁은 도로 주저앉았다. 가슴의 두근거림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들의 발소리가 헛간까지 왔을 때 화성댁은 숨이 딱 멎었다. 쪼그리고 앉으며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상님 혼령에 씌어 일순간 귀신이 되어 버렸던지 소리 없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 아, 이, 이런!’

그러나 끌쩍거리며 항아리 위로 흘러넘치는 물을 발견한 화성댁은 단말마적인 절망에 휩싸였다. 지난달에 항아리를 다 비우곤 김치냄새를 우려내가 위해 물을 가득 채워두었던 것이었다.

‘이래 죽을 팔자라면 그냥 죽어야지. 더럽게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가지고 바들바들 떨겠누?’

항아리 뚜껑을 머리에 인 채 눈만 살짝 밖으로 내밀고 있던 화성댁은 보살처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헛간 모퉁이로 막 돌아올 때 화성댁은 세상만사 다 포기한 사람처럼 눈을 감아버렸다,

밤하늘을 떠돌던 시커먼 구름이 별안간 크지도 않은 달을 감싸 안았다.

화성댁은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소낙비가 오는 게야?’

난데없는 물소리에 놀란 화성댁은 희망이 충전되는 눈으로 번쩍 떴다.

‘엇, 소피가 마려웠던 거야? 훗, 후후후??.’

화성댁은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싱겁게 뿌려대기 시작했다.

구름이 달을 놓아버렸다.

어른 거시기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그들의 고추가 거센 오줌줄기를 자랑하며 멋쩍은 화성댁의 웃음사이로 들락거렸다.

그들이 사립문을 완전히 빠져나갔다고 생각한 후에야 화성댁은 항아리 밖으로 나갔다. 쓸쓸한 눈으로 사방을 휘 둘러보곤 땅속에 숨겨두었던 보리쌀을 꺼냈다. 오지항아리에 넣어 박박 문질러 씻다간 손을 털며 일어났다.

화성댁은 미숫가루만 챙겨 집을 나섰다. 아직은 마음 놓고 불을 피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죽여줘. 부탁이야!’

저쪽 골목어귀에서 들려온 사위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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