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원수(元帥)가 되는 평등기치의 사회주의
20대에 원수(元帥)가 되는 평등기치의 사회주의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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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실상을 살필 북한과는 괴리 있는 얘기지만, 우리는 100살을 바라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대체로 20대에 학업을 마치고 이후 가정을 꾸리며 경제활동으로 직장활동 등 생업에 종사하면서 30년 남짓을 삶의 전성기를 누리는 시간을 둔다. 평균수명이 30세를 겨우 넘긴 고대시대에는 40세를 세상살이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불혹(不惑)이라 일컬었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세수(歲數)를 쉰 살로 보고 지천명이라 했다. 아득한 고전에 수십 차례의 상전벽해를 반복한 옛날 말이다.

하루가 다른 세태에 세상이 바뀌는 정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발달의 과정을 살펴도 사람이 성장하고 절정기를 맞는 주기도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다. 옛날에 노인 취급받던 60대가 인생의 제 2전성기로 인식될 만큼 건강의 기대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그만큼 생애주기가 늘어났다.

‘셀프’ 승진이 당연지사인 체제

그런 범주로 20대를 보자. 인간발달이론에 바탕을 두면 이 시기를 아동기를 넘긴 청년기로 보면서 성인초기로 분석한다. 학교생활을 포함한 세상살이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감을 끊임없이 통합시키며, 한편으론 그 정체성을 재구성하여 주체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때로 정리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는 각양의 실패를 경험하고 무력감과 상실감을 체험하면서 자아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시기로 본다.

이런 단계에 있는 사람이 인구 2000만을 헤아리는 체제의 원수칭호를 스스로 달았다. 왕조시대처럼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최고 권력자에 등극한 북한의 김정은 얘기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우리의 헌법까지 이상해지지만 편의적으로 국가체제로 봐 보자. 체제의 실상이 상식으로 이해되지 못할 구석이 너무 많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습기까지 한다. 지구상에 둘도 존재하지 않은 국가권력의 3대 세습은 차치하더라도 ‘칭호’로 불려지지만 어떻게 새파란 20대 청년이 공화국 원수가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우리와 많게는 20년 정도의 평균수명이 짧은 그곳이지만 20대 젊은이가 스스로 권좌에 폼을 잡았다는 얘기로 귀결될 만한 일이다. 여기에 그들의 군대인 인민군 원수를 겸한다니 속된 표현으로 ‘제 입맛대로’에 ‘셀프 별판’ 같다. 평생동안 권력세습에 대한 세뇌교육을 받은 북한주민만 불쌍하다. 원수칭호를 단 날 수천 명의 젊은 남녀군인이 김일성 광장에 나와 춤추고 환희를 연출한 경우는 또 어떻게 봐야 하나. 그 순간에도 굶어 죽은 인민이 철철 넘치는데도 말이다.

한편으로 범민련이라는 재야단체의 고위간부가 김정일 사망 100일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방북하여 김일성 만세를 외치고, 또 다른 재야단체의 간부인 한 목사도 역시 불법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입이 닳도록 칭송하고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이 방북에 대해 법정에서 분단극복을 위한 결단으로 증언한 현역 국회의원인 임수경도 건재하다.

잘 알고 있는 바대로 사회주의는 궁극적으로 계급을 타파하는 철저한 평등을 기치로 출발하였다. 이를 제창한 막스의 생각이 그랬다. 하지만 이미 죽은 이론이다. 결과평등이 아닌 기회균등을 최고가치로 보는 자본주의와 궤를 달리했다. 구 소련의 붕괴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공산국가의 궤도변화를 목격하는바 대로 사회주의는 실패의 습작이 된지 오래다. 중국이 개방경제를 수용한지 20년 이상이 되었고, 과거의 공산국가는 처절한 각오로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배우려고 안간힘을 기울인다.

기회균등도 결과평등도 없는 곳

모든 인민이 잘 먹고 잘산다는 종국적 평등을 어느 구석에서조차 찾기 힘든 우리의 북녘땅. 인민에게 그까짓 고깃국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이는 권력자는 온갖의 사치에 축첩도 제 마음대로다. 아버지를 권력자를 둔 덕분으로 저항 없이 권좌에서 세상을 지휘하는 원수. 임기제가 아닌 종신제로 김씨 일가에 충성하고 불경이 들키지 않으면 평생토록 호가호위하는 당간부들이 건재한 체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자극이 절실하다.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냐”로 패배적이며 상투적인 반론을 제기할 게 못된다. 사람도 시스템도 자극 없는 변화는 쉽지 않은 이치다.

정승재 (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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