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등교길엔 끝내 받지 못한 상장만이…
마지막 등교길엔 끝내 받지 못한 상장만이…
  • 곽동민
  • 승인 2012.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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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초등생 故 한아름양 눈물의 장례식
하늘도 노한 듯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5일. 10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아름양의 빈소에는 아버지 한광운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장례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름양의 고모는 빈소에 앉아 있기가 괴로웠던지 계속 건물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고 통영시 관계자들도 아름양의 장례식을 위해 아침부터 빈소를 찾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취재진의 질문공세에도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던 아버지 한씨는 며칠 전 언론에 보도된 잘못된 사실 때문에 가족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꼭 바로잡아 줄 것을 당부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씨는 목이 메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자식에게 일어난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지만 다른 자식들에게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되지 않겠느냐”며 “나랏분들께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아름양의 영정은 친오빠의 품에 안긴 채 운구차를 타고 고향집에 들른 뒤 사고 발생 당일 가지 못했던 학교로 향했다.

통영 산양초등학교 교정에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검은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모였다.

소나무동산에 둘러앉은 20여명의 초등학생들은 하얀색 상자를 감싸안듯 모여 앉아 있었다. 하얀 상자 안에는 실종 일주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같은 학교 친구 한아름양이 사용했던 크레파스와 필기구 등 학용품과 선후배들이 아름양에게 부치는 손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것일까. 유품 상자 안에는 방학식이 있었던 24일자로 아름양이 받았어야 할 친구 캐릭터 그리기 장려상 상장도 들어있었다. 상장에는 ‘친구사랑 주간에 실시한 교내 친구 캐릭터 그리기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상장을 수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름양과 같은 4학년인 김윤지양은 “여자애들 끼리는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며 “편지에는 함께 놀았던 추억 잘 간직할게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고 썼다”고 말했다.

아름양의 영정을 태운 검은색 차가 교정으로 들어서자 앳된 목소리의 훌쩍임이 들려왔다.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수줍지만 맑은 얼굴로 학교 운동장의 소나무동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던 아이들은 운구차가 들어서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한아름양의 영정사진을 든 친오빠가 차에서 내려서자 작은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운구차는 아이들이 서 있는 소나무동산 앞에 멈춰섰고 힘겨운 걸음으로 차에서 내려선 아버지 한광운씨는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인사를 나눴다.

사진속의 아름양은 맑게 웃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어느 누구도 마주 웃어주지 못했다. 친오빠의 품에 안긴채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아름양의 영정은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교실로 향했다.

학급내에서 알림장이나 친구들에게 건네줄 물품이 있을 때 모두에게 나눠주는 몫을 담당하고 있던 아름양의 책상 한 모서리에는 ‘나눔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아름양의 영정을 든 오빠가 책상에 앉자 아버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딸을 안 듯 책상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아버지의 눈물은 교실을 돌아 다시 운구차로 향할 때까지 그치지 못했다.

운구차에 오르기 전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통영을 찾은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의 손을 맞잡은 아버지는 목이 메어 겨우 한마디만 반복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아름이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교내에 흐르던 엄숙한 음악소리는 밝고 맑은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초등학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10살 아이들은 어른들의 어깨에 걸려 떠나는 아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시 소나무 동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한손으로는 눈가를, 한손으로는 교문을 나서는 아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름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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