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6>
오늘의 저편 <146>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으, 으악! 누, 누, 누구???”

쌩 소리까지 내며 눈앞을 지나가는 뭔가 때문에 하마터면 민숙은 뒤로 벌렁 나자빠질 뻔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람에 일단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기어가다시피하며 남편이 숨어 있을 그 굴로 갔다. 텅 비어 있는 굴속을 보곤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느끼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달까지 구름 터널 깊숙한 곳을 여행하고 있는지 사방은 어둡기만 했다.

이제 민숙은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머니와 남편의 행방이 묘연해진 판국에 총소리가 울렸으니 마음이 복작거려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둘려오고 있어서 그쪽으로 소릴 죽이며 다가갔다.

“얘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소년의 시체를 보며 화성댁은 숫제 주문을 외고 있었다. 지친 그녀의 두 눈에선 주제가 너무 복잡한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사람을 죽인 거예요?”

민숙은 누군가를 파묻고 있는 남편과 어머니를 보며 눈꺼풀을 번쩍 들었다.

“왜 내려왔니? 올라가거라.”

화성댁의 목소리가 딸을 향하여 싸늘하게 울렸다. 만삭인 딸에겐 정말 더러운 꼴을 보이고 쉽지 않았다.

민숙은 어머니의 그 목소리에 소름이 돋음을 느끼며 몸을 돌렸다. 하필이면 방금 눈앞을 스쳐간 그 누군가에 대한 두려운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족 아닌 누군가가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은 큰 바윗덩이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멍청한 먼동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멀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화성댁과 민숙 그리고 진석에게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건 바로 언제까지나 어둠에 잠겨 있고 싶은 것이었다. 그들은 간밤의 일을 영원히 비밀에 붙이기로 말없는 마음으로 굳게 약속했다.

“보복하러 오겠죠?”

민숙은 떨리는 음성으로 화성댁의 눈치를 살폈다.

“어린 게 혼이 빠지도록 겁이 나서 달아났는데 오긴 어딜 와?”

화성댁은 자신에게 주입시키듯 목까지 끄덕였다.

“길을 몰라서도 못 찾아올 거야.”

민숙이도 덩달아 목을 끄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밤중에 무작정 찾아들었던 마을을 무슨 수로 찾겠느냐 말이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며칠이 지나갔다. 마을로 내려가 요깃거리를 가져오곤 하는 일은 화성댁이 도맡아서 했다.

7월 23일, 민숙은 마을로 내려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총성이 거의 들려오지 않고 있어서 아기는 집에 가서 낳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거창하게 한 살림 가득 차려놓고 굴속생활을 한 것이 아니어서 몸만 빠져나가면 되었다.

민숙은 굴속에 남아 있겠다는 진석에게 함께 집으로 내려가자고 떼를 쓰듯 하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