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7>
오늘의 저편 <147>
  • 경남일보
  • 승인 201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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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은 목만 가로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해 두고 있었다. 태어날 아기는 절대로 보지 않기로. 한센병이 눈으로 본다고 전염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민숙은 끼니 핑계를 댔다. 딸 해산바라지하랴 사위에게 밥 배달하랴 할 어머니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려야 한다는 단서까지 야무지게 붙이면서 그랬다.

“내가 밥 먹으려 내려갈게.”

진석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아내의 임신소식을 듣는 그 순간부터 두려운 설렘으로 가슴을 태워왔다. 불러오는 배를 볼 때마다 자라고 있을 녀석에 대한 아픈 감동으로 온몸이 저려오곤 했다.

‘절대로 내 아이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을 만들지 않으리라.’

이렇게 진석은 자기 자신과 단단히 약속을 해두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기억 그것이 곧 생에 대한 욕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었기에.

“왔다갔다 번거롭잖아요?”

민숙은 또 그녀대로 키우고 있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물론 번거롭겠지. 그래도 내려갔다 올라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그러려고 그래. 알겠니? 요 깍쟁아!”

진석은 장난스런 얼굴로 싱겁게 빙긋 웃기까지 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할 말을 잃어버린 민숙은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쑥 내밀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7월 24일 초저녁이었다. 해질녘에야 일어난 민숙은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낮에는 몸이 유난히 무거워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다.

물을 길러 우물가로 가던 화성댁은 두런거리는 목소릴 듣고 몸부터 숨겼다.

‘아이고머니, 내 팔자야!’

담 위로 목을 쏘옥 올리다말고 그녀는 놀란 눈부터 홉떴다.

‘저 화상들이 여긴 뭐 하러 왔을까?’

얼핏 보아도 낯선 그들 두 명이 나환자 부부라는 것을 화성댁은 바로 알아버렸다.

‘왜 사니? 그 꼴들을 하고 왜 사는 거야?’

혐오감이 치밀어 오름을 느끼며 화성댁은 치를 떨었다. 그러다간 사위의 얼굴이 눈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자신의 입을 툭 쳤다.

‘흥, 까마귀가 숯검정을 만났으면 친구해야지. 지금 누굴 미워하는 거야?’

사위한테 저주를 한 것만 같아 제바람에 가슴이 찔리고 있었다.

‘허허허, 저, 저런 어쩌자고, 이 난리 통에!’

정말로 화성댁의 동공이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남의 빈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들이 몸을 이쪽으로 조금 돌릴 때 똑똑히 보았다. 그러했다. 여자의 배가 남산만한 것이었다.

‘안 돼, 안 돼. 절대로 안 돼.’

여자의 해산날이 코앞에 있다는 것을 직감한 화성댁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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