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숙은 끼니 핑계를 댔다. 딸 해산바라지하랴 사위에게 밥 배달하랴 할 어머니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려야 한다는 단서까지 야무지게 붙이면서 그랬다.
“내가 밥 먹으려 내려갈게.”
진석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아내의 임신소식을 듣는 그 순간부터 두려운 설렘으로 가슴을 태워왔다. 불러오는 배를 볼 때마다 자라고 있을 녀석에 대한 아픈 감동으로 온몸이 저려오곤 했다.
‘절대로 내 아이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을 만들지 않으리라.’
이렇게 진석은 자기 자신과 단단히 약속을 해두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기억 그것이 곧 생에 대한 욕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었기에.
“왔다갔다 번거롭잖아요?”
민숙은 또 그녀대로 키우고 있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물론 번거롭겠지. 그래도 내려갔다 올라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그러려고 그래. 알겠니? 요 깍쟁아!”
진석은 장난스런 얼굴로 싱겁게 빙긋 웃기까지 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할 말을 잃어버린 민숙은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쑥 내밀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7월 24일 초저녁이었다. 해질녘에야 일어난 민숙은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낮에는 몸이 유난히 무거워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다.
‘아이고머니, 내 팔자야!’
담 위로 목을 쏘옥 올리다말고 그녀는 놀란 눈부터 홉떴다.
‘저 화상들이 여긴 뭐 하러 왔을까?’
얼핏 보아도 낯선 그들 두 명이 나환자 부부라는 것을 화성댁은 바로 알아버렸다.
‘왜 사니? 그 꼴들을 하고 왜 사는 거야?’
혐오감이 치밀어 오름을 느끼며 화성댁은 치를 떨었다. 그러다간 사위의 얼굴이 눈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자신의 입을 툭 쳤다.
‘흥, 까마귀가 숯검정을 만났으면 친구해야지. 지금 누굴 미워하는 거야?’
사위한테 저주를 한 것만 같아 제바람에 가슴이 찔리고 있었다.
‘허허허, 저, 저런 어쩌자고, 이 난리 통에!’
정말로 화성댁의 동공이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남의 빈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들이 몸을 이쪽으로 조금 돌릴 때 똑똑히 보았다. 그러했다. 여자의 배가 남산만한 것이었다.
‘안 돼, 안 돼. 절대로 안 돼.’
여자의 해산날이 코앞에 있다는 것을 직감한 화성댁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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