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를 생각하며
무궁화를 생각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12.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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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운 (진주보훈지청)
각 나라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상징은 호랑이였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멤버 전원의 가슴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씩 새겨져 있었다. 이렇듯 나라를 동물에 비유해서 나타내기도 하지만 때론 말 못하는 식물에 비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것은 ‘무궁화’다.

'무궁화'는 애국가의 후렴구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꽃이다. 산해경서 언급된 '군자국'(君子國)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무궁화는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꽃이 지는 훈화'로 소개되었다. 구당서 신라전(新羅傳)에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으로 소개하고 있다. '무궁화'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 이후로, 그 이전에는 '목근(木槿)' 또는 '근화(槿花)', '순(舜)' 등으로 불렀다.

각국의 국화가 그 유래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모두 현대적 의미의 ‘내셔널 플라워’로 굳어지고 강조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전후의 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말하자면 각국이 세계를 무대로 외교적, 상업적 국익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상대국과의 마찰이나 위기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민족적 단합을 꾀하는 수단으로 국화(國花)라는 상징물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19세기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자기 나라 세력을 넓혀 가거나 보전키 위해 자체 결속과 단결을 부르짖는 민족주의의 역사와 국화의 그것이 일치한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탈근대주의, 포스트모더니티 조차 낡은 생각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열강이 할거하던 구시대의 상징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재해석 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 속에서의 국가적 위상은 불과 20~3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수준에 도달해 있다. 역사적인 경제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 G20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2012년엔 핵안보정상회의의 주최국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력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잠재해 있다. 50년이라는 급속한 시간에 근대성을 이뤄갔던 한국사회에서 모순이 충돌하는 내부적 위기와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주도하에 일어나는 세계화라는 외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위한, 한국에 의한, 한국의 정체성의 확립이 오히려 요구되는 시점이다. 민족적 상징물은 한국이 식민지 경험과 분단과 한국전쟁, 외부종속적인 근대화 과정이라는 시간적 맥락과 미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공간적 맥락에서 한국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여러 근대성 가운데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맥락을 주장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빠른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서 많은 도전과 응전을 거듭한 대한민국. 이제는 내외부적으로 다양하게 표출되는 요구와 갈등을 하나로 녹여내 새로운 위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무궁화로 상징되는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안으로 확보하고 세계 속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을 재구성할 시간이다. 세계화의 추세가 보편화 된 이 시점에서 한국은 무궁화로 표상될 수 있는 민족적 자긍을 수단으로 활용하여 근대성을 주체적으로 확립하고 탈근대로의 이행을 과거 역사처럼 이식적으로가 아닌 주체적으로 이뤄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기운·진주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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