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비빔밥 속의 에콜로지
진주 비빔밥 속의 에콜로지
  • 경남일보
  • 승인 2012.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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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육류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고기를 한 장 두껍게 썰어내 굽거나 튀겨 소스를 얹어서 먹는다. 이런 스테이크 요리가 서양의 주된 요리문화이다. 재료를 보면 스테이크는 자연의 구조상 2단계를 밟는다. 소나 돼지가 풀을 먹고, 그 고기를 사람이 먹는 2단계 먹이사슬 구조이다. 이런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재료는 음식의 생산, 유통, 소비에 있어서 복잡한 세부문제를 일으킨다. 먹이사슬의 비효율성도 그렇거니와 자연의 먹거리 통로를 막아버리는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소와 돼지를 산업적으로 키우는 서양사회로서는 환경파괴를 막을 수 없다. 소와 돼지사육에 맞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토양을 함부로 사용한다. 미국과 브라질이 보여주듯이, 옥수수와 사료생산에 걸맞지 않은 광대한 땅을 개발해 주변환경을 초토화시킨다. 게다가 아프리카 사람들이 배를 굶주리고 있을 때 서양의 소, 돼지들은 엄청난 곡식을 먹어 치운다. 이들 가축에게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산업용 수질과 토양오염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생물종의 다양성을 해치기도 한다.

서양의 스테이크 문화는 자연의 생태계와 인간사회의 빈곤층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실은 건강한 음식도 식사법도 아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전통비빔밥은 차원이 다르다. 우선 비빔밥 문화는 먹이사슬 1단계 구조에 근간한다. 자연의 땅과 물에서 생산된 쌀과 야채를 바로 끄집어 올려 물에 익힌 것을 주된 요리로 삼는다. 요리법과 식사법 또한 환경을 존중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생태적 환경구조를 지니고 있다. 서양의 스테이크 문화를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독주곡 같다. 접시를 하나하나 비워가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한국의 비빔밥 문화는 최소한 합주곡, 크게 보면 교향악곡 같다. 자연의 재료를 한곳에 모아 놓고 환경의 오케스트라를 벌이는 대표적인 환경음식이다. 동질요소를 추구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위계화시키는 스테이크 문화와는 달리 이질적인 요소를 한데 묶어 수평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서로 이질적인 영양소와 맛을 가진 밥, 나물, 고기, 달걀, 고추장이 한데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오방색이 한데 구현되어 있다. 이질적인 요소를 둥글게 모아 배치하는 자연순환의 은유, 먹는 사람이 이를 뒤섞고 비비고 흔드는, 참여 혹은 창조의 은유가 거기에 있다. 실로 한국의 비빔밥만큼 물질과 정신적으로 조화로운 음식을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비빔밥은 융합정신의 산물이다. 위아래로 나누지 않고 수평적으로 융합할 때 비빔밥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특히 진주비빔밥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성 싸움에서 의병과 군·관·민 그리고 돌을 나르던 부녀자들에게 급히 식사를 제공하려고 밥과 채소를 재빨리 뽑아 물에 데친 후 비벼냈다. 현재에도 철따라 나는 채소로 나물을 만들고, 특별한 비법으로 빚은 고추장을 쓴다. 곁들여 나오는 음식으로는 선지국이 전부이다. 다른 지방의 화려한 비빔밥과는 또 다른 겸손한 음식이다.

여기서 진주비빔밥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자연의 땅과 물에서 채소를 길러 그 채소를 바로 캐어 먹는 진주비빔밥 문화는 오늘날 친환경 음식문화라 칭할 수 있는 대표주자이다. 주재료인 채소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마치 미래의 부족한 자원을 예측이나 한 듯이 소박하기도 하고, 음식을 눈앞에 두고 땅과 물과 서로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원효의 화쟁(和諍)철학이 말하는‘자연과 인간이 하나이되 둘이며, 둘이되 하나라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존재를 실현한 듯하다.

스테이크 문화가 자연과 인간을 서로 죽이는 이항대립의 원리를 이룬다면, 진주비빔밥은 양자의 자연스러운 상생을 추구한다. 수평적인 융합의 원리 그리고 자연의 순환을 품는 에콜로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산업폐기물로 몸살을 앓는 자연과 음식재료에 손사래를 치며 최소한 음식에 있어서만이라도 자연으로 돌아가 풍요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한다면 진주비빔밥을 생각해보자. 검소한 재료와 방식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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