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옥윤 (객원논설위원)
‘모시두레’, ‘돌개삼’이라는 말이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농촌에서 유행했던 두레길쌈의 방식이다. 동네 아낙들이 한데 모여 베짜는 일을 돕는 방식이다. 매년 한여름 밤이면 대마나 모시를 수확하여 실을 뽑고 베를 짜는 일이 아낙들의 연례행사였다.▶길쌈의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당시 유적 속에서 물레부품과 뼈바늘 등이 출토된 데에서 유추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길쌈기술도 발달하여 야능라, 세라와 같은 고급 옷감까지 생산해 냈다. 더불어 길쌈놀이와 베틀가와 같은 노래를 만들어 고통을 잊는 방편으로 삼기도 하였다.
▶길쌈 철이 되면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된다. 낮에는 농사일과 집안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밤이면 저절로 감기는 눈을 부릅뜬 채 삼삼기·모시실 비비기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손과 무릎으로 비비고 입으로 실을 뽑는 과정은 물론 밤새 베틀을 움직여도 ‘한 마’의 베를 얻기도 힘들었다.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계절이 바로 길쌈의 계절이다.
▶잠 못 이루기는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열대야의 탓도 있지만 올림픽 열기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과의 시차로 주요 경기는 주로 자정을 넘긴 꼭두새벽에 이뤄져 우리의 생활은 낮과 밤이 바뀌고 있다. 아낙들이 길쌈의 고통으로 고운 옷감을 짜듯 스포츠 선수들은 타국의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으로 현장을 뜨겁게 달구면서 그동안의 노력들 즉, 땀의 결실을 맛보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들을 응원하기 위한 우리의 모습들 또한 행복하고 즐겁다. 더위를 식히는 음료· 과일과 함께. 이왕 잠 못 이룰 바에야 선수들의 선전을 아파트가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고 응원하고픈 충동을 억지로 참는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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