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9>
오늘의 저편 <149>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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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오늘의 저편

“저 여자 분도 아기를 낳으려나 봐요.”

소리만으로도 민숙은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도 출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어서일까.

“부정 탄다.”



“무슨 일 있었어요?”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어오는 화성댁을 보며 민숙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은 무슨 일? 재수가 없으려니까 거지발싸개 같은 것이 다 기어 들어오고 지랄이야?”

무뚝뚝하게 툭 쏘아붙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하며 부엌으로 들어가던 화성댁은 비로소 물동이가 손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데요? 누가 우리 마을에 왔는데요?”

마당으로 내려온 민숙은 화성댁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알 거 없다.”

화성댁은 물동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민숙은 말없이 어머니의 뒤를 밟았다. 골목길에 어머니의 물동이가 놓여 있는 것을 먼저 보았다. 이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은 그녀는 귀를 세우며 다가갔다.

“안 돼. 서.”

딸이 뒤따라온다는 다 알고 있었던 화성댁은 비명소리를 쫓아 앞질러가려는 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저 여자 분도 아기를 낳으려나 봐요.”

소리만으로도 민숙은 상대 여자의 상황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도 출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어서일까.

말로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동정심과 신기함 두려움 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부정 탄다.”

화성댁은 계속 다가가는 딸의 팔을 와락 잡아당겼다.

“참 어머니도, 피난길에 아길 낳는 사람이 가엾지도 않으세요?”

민숙은 울먹이는 소리로 대꾸했다.

“이년아, 냉수 처먹고 정신 차려라. 지금 네년이 누굴 동정할 처지냐?”

급기야 화성댁은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모름지기 사람에겐 주변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딸에게 번쩍번쩍한 연줄을 잡게 해줄 주제도 못되는 터여서 큰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소원이 있다면 딸 주변에 더 이상은 나환자가 생기지 말았으면 하는 그것이었다.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주춤하며 민숙은 뜨악한 얼굴로 어머니를 보았다. 인정을 속없이 쓰고는 하진 않았어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잔인할 정도로 몰인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지랄하지 말고 얼른 집구석으로 돌아가라.”

딸을 집 쪽으로 밀어붙이며 일부러 독한 말까지 한 화성댁은 곧 우물로 향했다.

민숙은 입을 꾹 봉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체하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까지 확인한 후 곧장 방금 그 여자에게로 발길을 도로 돌렸다.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의 노예처럼 그렇게 민숙은 무작정 여자에게 가고 있었다. 몇 발작 가다간 아랫배에서 큰 꿈틀거림이 느껴져 슬그머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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