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호' 유감
'비보호' 유감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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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것들 즉 자신, 가족, 친구, 친지 그리고 산, 들, 강, 구름, 나무 등의 자연과 자신이 하는 일, 취미, 돈, 명예, 권력 등 많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애써 보호하고,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은연 중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소중한 것들은 모두 중요한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묻는다.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어느 것이 가장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심지어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고 장난스럽게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각자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속에 순위를 정해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가 생각하는 최우선 가치는 사회 전체가 추구하는 공동선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빠름’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빠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 특히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속도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득을 추구하는 회사는 사활을 걸고 빠르게 움직인다. 또한 여가로 즐기는 스포츠에서도 빠른 것이 최선인 듯하다. 주위 모든 것에서 빠른 것을 추구하는 우리는 어느덧 우리의 몸도, 생각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되어 모든 생활에서 ‘빠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듯하다.

교통표지판 중에 ‘비보호 좌회전’이 있다. 푸른신호등일 때 반대편 차선에 차가 없을 경우 좌회전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알아서 요령껏 가면 빨리 갈 수 있으나 사고가 날 경우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표지판 역시 우리의 생명이나 재산보다 ‘빠름’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우리들 사고의 한 단면이다. 처음 시작은 생활의 편의나 작은 이득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나중에는 소중한 것들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되고, 이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출퇴근 시 자주 보게 되는 재미있는 광경이다. 신호등이 있는 곳마다 교통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경찰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 신호를 대신해서 통제해 주는 사람이 필요할 듯한데, 신호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까 신호등과 함께 사람이 같이 통제하는 아주 우스운 광경 또한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우리는 신호등과 통제하는 사람 사이의 조그만 간격을 뚫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기를 쓰고 달린다.

달리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멈추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빨리 달려서 무엇을 얻게 될까. 우리의 생각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어 빠름을 추구하다 보면 점점 더 빨리 달리게 되고, 종래에는 멈출 줄도 모르고 달리다가 끝을 맺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조금은 천천히 가고, 조금은 여유롭게 살면서 가끔은 가다가 멈추기도 하면 우리들이 본래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보호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의 삶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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